본보 취재팀은 누리꾼의 성향을 진단하기 위해 포털사이트 다음과 네이버가 2003년부터 최근까지 실시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 280건을 선정한 뒤 이 중 찬반 비율이 65% 이상인 130건을 추려 대학 교수 10명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누리꾼은 ‘합리적 보수’=누리꾼이 진보적인 이념 성향을 띨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합리적 보수’ 또는 ‘온건 보수’ 성향이라는 데 많은 전문가의 의견이 일치했다. 진보와 보수가 혼재된 ‘탈(脫)이념적’ 성향으로도 해석된다.
예를 들어 누리꾼은 한총련을 합법화하는 데 반대하고(66%) 대마초 흡연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가 많다(71%).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유죄판결 역시 찬성이 83%로 훨씬 많았다.
고려대가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할 때 이를 저지하려던 고려대생의 집단행동에 대해서도 반대 비율(60%)이 높았다.
또 일부 인사에 특권을 부여하는 것에 극도로 거부감을 나타내는 등 ‘절대적 평등’을 지향하는 모습이다.
군복무 면제를 위해 국적을 포기할 경우 재외동포로서의 특혜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이 93%나 됐다.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지만 국적포기자 부모의 실명을 공개하는 데는 81%가 찬성했다.
프로게이머를 위한 병역특례 도입 검토(반대 66%), 타이거 우즈의 제주도 무비자 입국(반대 73%) 등 일부에게만 특혜를 주는 방안에 대해서도 거부반응을 보였다.
▽‘표현의 자유’에 극도로 민감=누리꾼은 똘똘 뭉치는 성향이 강하다.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며 인터넷 규제 얘기가 나오면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는 것이 대표적.
법원이 10·26사태를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일부 장면을 삭제하라고 판결했을 때 71%가 반대했다.
어느 국회의원이 호텔방에서 대학 여교수와 함께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70%가 사생활 침해 우려에도 불구하고 보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적 테두리’를 벗어나는 수준의 표현의 자유도 찬성하는 경향. 공무원 노조의 정치인 패러디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67%였고, ‘연예계 X파일’을 유포한 누리꾼 처벌에 대해서는 77%가 반대했다.
온라인에서 누리는 다양한 혜택을 지키는 데도 적극적이다. 인터넷 종량제에 대해서는 97%가 반대했다. 음악 다운로드 서비스를 유료화하려는 데는 73%가 반대했다.
또 누리꾼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해 3·1절 당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일본은 한국 침략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95%가 찬성했다.
한강의 한자 표기를 ‘漢江’에서 ‘韓江’으로 바꾸는 데 90%가 찬성했고, 광화문 한글 현판을 한자로 바꾸는 데는 68%가 반대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다수의견에 쏠림현상… 감정 과잉표출도▼
전문가들은 국내 문제에서 보수와 진보를 오가는 누리꾼들이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배타적인 성향을 띠는 데 우려했다.
온라인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반일(反日) 감정이 대표적. 독도의 유인화(有人化)나 군 병력 파견에 대해 90% 이상이 찬성했다. 환경오염 또는 외교적 마찰을 고려하지 않은 반응이다.
부산 중구 광복동에 일본인 거리를 조성하는 방안이나(반대 83%) 경남 마산시가 일본 스모 선수를 초청하는 계획(반대 67%) 등 관광사업에 도움이 되는 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누리꾼의 의견 표출이 즉흥적이고 감정적으로 흐르면서 ‘사이버 인민재판’으로 변하기도 한다. 여론의 대세를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어 누리꾼이 다수 의견을 따라가는 ‘쏠림 현상’이다.
예를 들어 지하철 안에서 애완견의 오물을 치우지 않은 여성의 사진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왔을 때는 ‘개똥녀’라고 부르며 입에 담기조차 거북한 욕설을 퍼부었다.
성매매업주의 얼굴 공개, 노숙자 강제 보호, 공공장소에서 행패를 부리는 취객 격리수용 등 인권침해 소지가 높은 사안에 대해서도 찬성하는 의견이 많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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