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 훈장과 마을 어른들이 학습을 끝낸 학동들을 세워놓고 구술시험을 보는 전통 ‘책거리’ 행사. 240수에 이르는 한시를 먼저 음으로 낭송한 뒤 이를 음과 훈으로 다시 암기하고 마지막으로 평가자의 질문에 따라 한시를 받아쓰는 단계를 거친다.
‘평가위원’은 조 군의 부모와 마을 어른대표 등 6명. 점수가 안되면 다시 책거리를 해야 한다. “오늘 통과 못하면 갈비도 안 먹고 헤어진다”는 훈장 선생님의 말에 긴장된 아이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구슬처럼 맺혔다. 측은했던지 “물 좀 먹이고 하자”는 말이 나왔지만 이내 맞은편에서 “원래는 다 외울 때까지 물 한 방울 안 주는 게 원칙”이라고 응수했다.
조 군은 2월부터 동네 아이들 3명과 함께 매주 월요일이면 방과 후 ‘서당’에 갔다. 훈장 선생님은 이 마을에 사는 윤상환(尹祥煊·43·동국대 사학과 강사) 씨. 어렸을 때 마을 아이들과 함께 서당에 다닌 경험을 살려 그는 ‘마을 훈장’이 되겠노라고 동네 어른들에게 자청했다.
이날 조 군이 암송한 한시는 조선시대에 초급용 서당 교재로 쓰였던 ‘추구(推句)’에 나오는 것. 오언으로 된 한시 구절들을 뽑아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일깨우기 위해 만들어진 아동교양도서다.
열심히 한문 공부만 한다고 해도 1∼2년이 걸리는 양이지만 조 군은 4개월 만에 익혔다. 다른 ‘학동’들도 시작할 땐 기본적인 한자밖에 몰랐지만 ‘훈장님’을 만나고부터 한시의 매력에 푹 빠졌다. 조 군은 이미 한자능력검정시험 2급 정도의 수준이다.
훈장 윤 씨는 “젊은 사람들은 아이를 학원에만 보내려고 하는데 공동체와 예의범절에 대한 이해 없이 외우기만 하는 공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한자가 생각나지 않아 몇 분 동안 헤매기도 했지만 이날 조 군은 결국 약 1시간에 걸친 험난한 테스트를 통과했다. 이제 미처 책거리를 하지 못한 동료들의 학습을 도와줄 수 있게 된 것.
“장하다”라는 심사평에 조 군은 큰절로 답례했다. 마을 어른들은 조 군에게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이 기사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노동현(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4년) 손민정(연세대 경영학과 3년) 임우선(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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