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학부모가 가진 자원은 어떤 게 있을까. 시간, 돈 등이다. 자녀에게 관심 갖는 시간을 늘리면 합격 가능성이 조금 높아질지 모르겠다. 돈을 들여 과외를 시키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입시생을 둔 집안에서는 대체로 당사자 및 부모가 가용(可用) 자원을 총동원한다. 여러 자원 가운데 수험생의 끈기와 두뇌는 자신이 해결해야 할 몫이다. 반면 경제력은 외부 요인이다. 그래서 성적 부진을 ‘고액 사교육비를 부담하지 못하는 탓’으로 돌리면 일단 자기 책임에서는 벗어난다.
그러나 따져 보자. 과연 과외가 그렇게 효과가 있을까. 더욱이 ‘족집게’ 고액 과외가 결정적인 도움을 줄까.
우등생 상당수는 여전히 굳이 돈과 시간을 들이며 과외를 받지는 않는다. 번거로운 과외 대신 혼자 차분히 공부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을 그들은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가르치는 교사나 강사, 잘 만들어진 교재가 있더라도 결국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명문대 합격생이 많은 고교는 대개 학생들끼리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자율학습 분위기가 좋은 곳이라는 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서울대의 논술시험 때문에 대통령과 여당 정치인까지 발끈하고 나섰다. 사실상 본고사이므로 사교육 혜택을 받으면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는 “통합교과형 논술은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어 사교육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반응이다.
이는 기우(杞憂)가 아닐까. 서울대의 새로운 논술 유형이 어떤 것인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사교육과는 별 관계 없이 독서량이 풍부한 학생에게 유리할 듯하다. 독서야말로 남이 가르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
아마도 학원에서 다이제스트식으로 간추려 가르치는 고전 목록, 이에 바탕을 둔 천편일률의 논술 요령은 통하기 어려울 것이다.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고, 꾸준히 쓰는 학생이 낫지 않겠는가.
한국은 사람이 주요 국부(國富)인 나라다. 21세기엔 객관식, 단답형 문제를 잘 푸는 정형화된 인력보다 창의성이 돋보이는 인재가 필요하다. 이런 인재를 키우려면 학창시절부터 다양하고 심층적인 독서를 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개개인의 논리력,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길이기도 하거니와 한국 전체의 지적(知的) 기반을 튼튼하게 하는 길이다.
논술시험이 너무 어려워 학습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부질없다고 본다. 시험 과목을 줄이거나 쉬운 문제를 내더라도 수험생의 부담은 마찬가지다. 자신의 자원을 모두 투입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만약 매우 쉬운 수능 문제가 나온다면 학생들은 과외를 받지 않고 스트레스 없이 느긋하게 공부하는가. 그렇지 않다. 어느 경우든 고3이라면 밤늦게까지, 치열하게 공부하기 마련이다. 최상위권 학생 대부분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는 현행 수능시험은 인재들의 우민화(愚民化)를 촉진하는 제도 아닌가.
대학입시에서의 논술 도입은 한국의 지식 수준을 높이는 호기(好機)가 될 수 있다. 특히 침체된 인문학은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고 지식 기초산업인 출판업이 융성해질 수 있다. 대학입시를 한국의 미래와 관련해서 좀 더 멀리 넓게 보자. 고1 학생들, 너무 불안해하지 마시라. 여름방학 중 진득하게 앉아 책 읽는 재미에 빠져 보라. 두뇌도 개발되고 입시 대비도 될 것이니….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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