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서울 광진구 광장종합사회복지관 강당. 사회자의 호명에 이주용(78) 씨와 오명숙(72) 씨가 나란히 행진해 들어왔다. 부부의 혈육은 한 명도 없었지만 가까이 지내는 인근의 무의탁노인 100여 명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주례사가 끝나자 할머니 하객 중 17명이 축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불렀다. 음정, 박자 모두 불안했지만 부부와 참석자들의 가슴을 울리기에는 충분했다. 수줍게 서 있는 신부를 바라보는 신랑의 눈에 어느덧 눈물이 맺혔다. 하객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이 씨는 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하고 홀로 살았다. 신장장애 2급인 이 씨는 공사장에서 일하다 3층 건물에서 떨어져 왼쪽 팔을 쓰지 못한다.
“누가 나 같은 사람이랑 결혼을 하겠어요. 외롭고 힘들 때마다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가장(家長) 노릇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나이 오십에 저 사람을 만난 거예요.”
오 씨는 첫 남편과 사별 후 홀로 지내다가 44세에 이 씨를 만났다. 너무 늦게 만나 자식은 낳지 못했다. 매주 3번씩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하는 남편의 팔과 다리가 되어준 이 씨는 지난해 유방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이다.
이날 결혼식을 위해 복지관 직원들은 기꺼이 자식 노릇을 했다. 인근 미용실에서는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진 신부를 위해 멋진 가발을, 웨딩숍에서는 턱시도와 드레스를, 식당에서는 하객들의 점심을 준비했다.
“죽기 전 소원이 딱 하나 있었어요. 우리가 함께 찍은 결혼사진을 방안에 걸어두고 싶었는데…. 이젠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습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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