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전투기 조종사(파일럿)는 동서양 어디서나 멋지다.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파일럿의 일상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되다. 비행훈련과 평가, 피 말리는 긴장의 연속이다. 자칫하면 13일 밤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사고로 산화(散華)한 그들처럼 꽃다운 나이에 조국의 산하에 목숨을 바쳐야 한다. 그들의 일상과 훈련과정 등을 들여다봤다.
▽애환=수십억 원부터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전투기를 몰고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조종사들은 한마디로 ‘나라에 매인 몸’이다. 비상출격에 대비해 영내 거주가 원칙이다. 장시간 외출도 제한되며 휴가도 제대로 보내기 힘들다.
또 안전규정에 따라 비행하기 12시간 전부터는 술을 마실 수 없다. 다음 날 비행이 계획되면 최소 8시간은 수면을 취하도록 돼 있다. 군의관한테 매일 건강검진을 받고 감기약 등 흔한 약물도 군의관의 처방 없이는 복용할 수 없다.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관리하기 위해 화장실을 비롯해 조종사들의 일상 공간에는 항상 클래식 음악이 나오도록 하고 있다. 이 정도 되면 몸값이 천문학적인 프로 스포츠 선수의 몸 관리에 못지않다.
조종사의 컨디션이 전투력에 직결될 뿐 아니라 생명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비행 예정 조종사의 바이오리듬이 나쁘거나 건강에 약간의 이상이라도 발견되면 비행 임무에서 제외된다.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보니 금기도 적지 않다. 비행 전날 밤 나쁜 꿈을 꾸면 지휘관에게 비행 취소를 건의할 수도 있다. 한 조종사는 “조종사의 아내가 악몽을 꾼 경우에도 비행 취소를 요청하는 ‘사랑의 전화’를 오래전부터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비행 전 용변을 볼 때 자기만의 화장실 칸을 사용하거나 특정 음식을 가리는 등 저마다 징크스를 갖고 있다. 하지만 경륜이 쌓일수록 징크스를 깨거나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생활에 비해 대우는 그리 후한 편이 아니다. 비행경력 10년차 교관급 조종사의 경우 월급 외에 매달 비행수당 70만∼80만 원, 증식비 8만 원을 받는다. 비행수당은 최근 8년간 단 한 차례 5% 올랐을 뿐이다. 공군 최고의 엘리트라는 자부심과 조국의 영공을 수호한다는 책임감이 이들의 버팀목이다.
▽훈련과 평가의 연속=일반 조종사들은 매주 평균 3, 4차례 비행훈련을 실시한다. 베테랑인 교관급 조종사들은 야간비행을 포함해 5, 6차례까지 비행에 나선다.
시속 500km 이상의 급격한 공중기동이 다반사인 전투기의 경우 단 한 차례 비행에도 많은 체력이 소모된다. 또 비행 중에는 지상관제소와의 교신을 비롯해 수많은 계기의 작동 점검, 기상 관측 등을 하느라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
특히 이번에 사고를 낸, 저고도 경보장치가 없는 F-5E/F나 F-4E 기종으로 야간비행 훈련을 할 때는 숙련된 조종사도 초긴장 상태다. 한 조종사는 “하루에 주·야간 비행을 모두 하면 비행 후 온몸이 너덜너덜한 걸레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라매를 향한 여정=조종사에게 건장한 신체는 기본이다.
조종 후보생 선발기준에 따르면 맨눈 시력은 0.8 이상이지만 첨단 항공장비의 발달로 내년부터 0.5로 완화된다. 실제로 공군 조종사 10명 중 1명꼴로 안경을 쓰고 비행한다. ‘흉터가 있으면 조종사가 될 수 없다’는 속설과 달리 심한 흉터가 아닌 맹장수술 자국 정도라면 전투기 조종에 무리가 없다.
조종사가 되려면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도 약 2년간 험난한 교육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모든 훈련과정을 거쳐 전투기 조종사가 되는 비율은 공사 출신의 경우 1기수(180여 명) 중 25% 안팎이다. 전 비행교육을 끝내고 일선 전투비행대대에 배속된 뒤 추가교육을 마친 조종사를 ‘요기(僚機) 조종사’라고 부른다. 요기 조종사 1인 양성비용은 약 30억 원.
공군 관계자는 “요기가 분대장과 편대장을 거쳐 총비행시간이 750시간 이상인 베테랑 교관까지 되려면 8년의 시간과 1인당 최고 57억 원의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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