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코리아]제3부 배우며 삽시다<3>늘어나는 ‘노인학생’

  • 입력 2005년 7월 16일 03시 05분


이흥수(76) 씨는 자칭 ‘착실한 실버 학생’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 근처 공원에서 에어로빅으로 몸을 푼 뒤 서울 종로구 경운동 서울노인복지센터로 향한다.

센터에서 이 씨는 사진 편집에 주로 쓰는 ‘포토샵’ 프로그램 사용법과 하모니카, 춤을 배운다. 요즘은 경쾌한 ‘자이브’에 푹 빠졌다.

“젊은 시절에는 일 아니면 공부를 위한 공부만 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야 내 잠재력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자식들 키우며 먹고살겠다고 힘들게 지내왔는데 늙어서라도 좀 편히 살다 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배운다는 자체가 너무 즐겁고 배울수록 욕심이 생기는 걸 어쩝니까.” 서울 강남구 노인복지관에서 인터넷을 배우고 있는 임규방(61·여) 씨는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취미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요즘 그는 평소 관심 있었던 클래식 기타 연주법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익히고 있다.

박상기(78) 씨는 풍경화나 인물화 그리기에 매료돼 있다.

박 씨는 “캔버스 앞에서는 네다섯 시간이 화살처럼 지나갈 정도”라며 “옛날엔 그림 그릴 여유가 없어 바라보기만 했는데 지금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치매노인 요양소에 그림 5점을 기증했으며 복지회관에서 ‘그림친구’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노년기의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노부부 핵가족이 급증하면서 경제적인 대책뿐 아니라 노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서울 송파노인종합복지관의 관계자는 “정원제 프로그램이나 컴퓨터 강좌 수강신청 때는 새벽부터 길게 늘어선다”며 “누구누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닌, ‘제2의 인생’을 맞은 한 사람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 복지관의 회원은 4020명에 이르고 하루 이용 인원은 350명 정도.

복지관 측은 “규정상 등록이 불가능한 60세 미만이 강좌를 듣고 싶다고 문의해 오는 경우가 많아 ‘아직 젊으니 몇 년 후에 오시라’고 안내한다”고 전했다.

강남구 노인복지관의 정명희 사회복지사는 “어르신들은 배우는 속도는 느리지만 열정만큼은 젊은 사람 못지않다”며 “질문도 많이 하셔서 강사들이 쉬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대 최성재(崔聖載)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제 및 의료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노인의 ‘가치 있는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며 “이제는 노령기를 위해 중년기부터 준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노인교육은 고령화를 겪는 전 세계가 맞닥뜨린 문제”라며 “노인이 여생에서 보람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관(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 4년) 조기현(서울대 노어노문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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