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 한마디에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두발자유화 서명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둔 쾌거. 서로 끌어안고 만세를 불렀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졸업한 부산의 한 여고는 타교에 앞서 두발자유화 조치를 취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얼마 전 두발자유화를 요구하며 고교생들이 시위를 벌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 “두발자유는 학생의 기본권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권고했다고도 한다. 많은 게 변했다지만 현재 학교는 두발자유 문제에 관한 한 더 많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사춘기를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성과 외모에 관심이 급증하며,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것을. 바리캉으로 머리가 밀린 한 모범생 친구는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머리카락을 강제로 깎이는 순간 치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하던 공부도 안 된다”는 푸념을 그냥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두발규제를 갑자기 중지할 경우 학생들의 탈선과 면학분위기 저해를 걱정하는 학부모나 선생님들도 많다. 하지만 일찍이 두발자유화 대열에 참여한 내 모교도 우려됐던 탈선문제는 발생하지 않았고 학생들의 학업수준도 예전과 변함이 없었다. 선진국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두발자유화로 인해 탈선이 증가했다는 보고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한다. 한편 탈선, 학력저하 등에 대한 어른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학생들의 몫이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풀어달라고 조르기보다는 순차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서로 신뢰를 쌓아가다 보면 차츰차츰 원하는 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강주리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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