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서울대는 가만히 있어도 우수한 학생이 찾아올 터인데, 왜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의 공교육을 좌지우지하려 드느냐’라고 의아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우수한 학생’에 대해 오해가 있다는 데서 서울대 입시안은 출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수한 학생’이란 객관식 시험에서 출제자가 숨겨 둔 답을 찾아내는 학생이었다. 학생들은 스스로 노력해서 문제를 분석하고 풀어 나가는 논리적인 과정에 대한 훈련보다는 출제자가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를 우선 생각하고, 또 지식을 잘 정리해 주는 사람이 해 놓은 것을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그대로 익히는 데 몰두해 왔다. 이 때문에 ‘정답’을 찾아내는 요령과 기술을 가르치는 데 드는 사교육비는 실로 천문학적인 규모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입시의 족쇄에서 풀려나기는 했지만 어떤 문제든 “정답은 하나”라는 데 길들여져 있다. 하지만 정답은 둘 또는 그 이상일 수 있다. 또 왜 그것이 답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증거를 제시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훈련이 더 중요하지만, 현재의 교육에서는 그런 훈련이 설 자리가 없다.
나는 수강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우리의 교육문화를 분석하라’는 과제를 몇 차례 낸 적이 있다. 한 학생의 증언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예술계의 이 학생은 과외 레슨을 받아 입학할 수 있었고, 지금은 레슨을 해 학비를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레슨을 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학생의 창의력을 꺾는 작업”이라고 했다. 창의력을 숨기고 시험관이 기대하는 바에 맞추어야만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계에서조차 창의력을 억제하고 표준에 맞추어야 한다면 우리는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서울대가 정시모집에서 통합교과형 논술에 무게를 두려고 하는 것은 단답형의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사회문화현상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면서, 문제의 특정 현상이 다양한 변수들과 어떤 상관관계를 맺으며 나타나고 있는지를 설명해 내는 능력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통합교과형의 논술시험, 그것은 생소한 것일까?
현재 진행 중인 ‘청계천 복원사업의 의미를 논하라’는 문제가 주어졌다고 해 보자. 이 사업은 토목공사의 측면에서만 고려되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경제, 유통산업, 역사, 관광, 문화, 교통체계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여기에 정치적인 측면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 이 모든 측면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인 연관성을 지니고 있기에 전체적인 맥락에서 청계천 복원사업의 의미를 논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고교 교과서 중 역사, 사회문화, 정치경제, 과학 등의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을 총망라해서 논의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통합교과형 논술시험에 반대하는 정치인 교육당국자 시민단체들이 제기하는 우려의 목소리에서조차 우리는 ‘통합교과형 방식의 진술’을 엿볼 수 있다. 즉 “이런 형태의 논술시험은 사교육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고, 강남의 부동산 가격을 잠재우려는 정책에 역행하며,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계층에만 더 좋은 기회를 줄 것”이라는 논리도 현상을 전체적인 시스템의 맥락에서 파악하려는 통합교과형인 것이다.
이것을 포기하라는 것은,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을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하는 근시안으로 기르라는 의미다. 이들을 하나의 문제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생각할 줄 아는 사려 깊은 시민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
이문웅 서울대 교수·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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