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토론마당]퇴폐공연팀 블랙리스트 작성

  • 입력 2005년 8월 4일 03시 11분


《MBC 생방송 ‘음악캠프’ 출연자의 알몸 노출 방송사고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이명박 서울시장은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공연에 대해서는 단속을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또 퇴폐적인 공연팀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대중음악계는 블랙리스트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독창적인 예술도 사회 통념과 윤리를 벗어나면 당연히 제재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예술 아닌 외설은 처벌해야▼

인디밴드 카우치가 진정 ‘인디펜던트’하게 음악활동을 해 왔다면, 그들에게 치명적인 것은 성기를 드러내 놓은 채 흔들며 발광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공중파 TV의 생방송에 출연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방송에 ‘디펜드’하지 않았다면, 고도한 창의성으로 ‘성기를 흔드는 새로운 댄스뮤직’을 계속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숭고한 예술정신으로, 고상한 창작행위로 믿는 사람들에게만 은밀하게 계속 제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이번 사고가 아시아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한류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이 신문과 방송의 싸움인 양 판을 키우고 부추기는 일도 없었을 터인데 애석하다. 이번 방송사고는 예술과 외설의 잣대로 시비할 일이 아니다. 건강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 볼 때 그건 시청자로 하여금 심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게 한 범죄행위였다. 공중파 방송을 타고 전국에 생중계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그들의 행위는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예술 및 표현의 자유와도 아무 상관이 없다. ‘음란이냐 예술이냐’라는 문제는 역사적으로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것을 구분할 권위를 가지지 못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도덕은 음란행위와 예술행위를 구분하고 심판해 왔다. 법과 도덕은 시대정신을 가장 잘 반영하는 규범이므로 결국 사회통념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하게 유효한 척도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들의 행위에 대해 ‘즐거웠다’ ‘훌륭했다’ ‘숭고했다’라고 말할 수 없다면, 이 논란을 두고 예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는 것은 의도적으로 논점을 흐리기 위한 술책이거나 자기기만이다.

혹자는 이번 일을 계기로 방송검열이 강화되면 예술 창작활동이 위축되고, 결국 한국문화의 창의성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무 살 청년이 성기를 드러낸 채 춤을 추는 것이나, 며느리가 시어머니 뺨을 후려치는 장면은 현실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는 음란·패륜임이 분명하다. 한국 대중문화 발전은 강력한 제한과 자기 검열로부터 나온다. 한류의 힘은 진정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음란과 패륜은 아니다.

공연예술이란 관객을 두고 출연자가 무대에서 상영, 연주, 상연 등의 방법으로 공개 연출하는 음악 무용 연극 등을 말한다. 다중을 관객으로 하는 공개된 공연예술이라면 거기엔 당연히 일정한 규범이 필요할 것이고, 형법은 그것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번 사고 전부터 공연음란죄는 처벌받아 왔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이명박 서울시장이 사회 통념에 어긋나는 공연에 대해 단속을 강화하고, 퇴폐적인 공연 팀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출연을 제한할 계획임을 밝혔다. 만약 홍익대 앞 카페 등에서 이런 식의 공연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예술의 이름으로 보호할 대상이 아니라, 심각한 문화 전복(顚覆)이라는 점에서 마땅히 제한돼야 한다.

문제를 일으킨 출연자들은 공연음란죄나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면 그만이지만, 모욕당한 국민은 누구에게서 보상받을 수 있는가. 이번 사건이 방송 시스템의 위기, 특히 심의 기능의 마비에 기인하는 것이기에 해이해진 방송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방송법 전반을 재검토하는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구승회 동국대 교수·윤리학

▼감정적 언어폭력 더 위험▼

삐삐롱스타킹이라는 펑크 밴드가 1997년 생방송 도중 카메라를 향해 침을 뱉고, 가운뎃손가락을 쳐드는 욕설을 한 뒤 1년간 방송출연 정지라는 훈장(?)을 달고 해체됐다.

그 뒤로 8년이 흘렀다. 지난달 30일 MBC 음악캠프 생방송 중에 한국 방송사상 최악의 사건이 터졌다. 인디밴드 멤버인 두 청년이 프로그램 방영 도중 ‘알몸 노출’이라는 극단적인 퍼포먼스를 했던 것.

문제의 사건이 발생한 뒤 확산되고 있는 ‘후폭풍’은 한국 사회를 뒤집어놓을 듯이 강력한 것이었다. 누리꾼(네티즌)들은 벌 떼같이 일어나 문제의 청년들을 성토했고, 언론은 자극적인 뉴스거리를 계속 내놓으며 맞불을 질렀다. 마약 의혹, 정신 이상에 이어 한 멤버의 진술을 확대 해석해 서울 홍익대 앞 클럽에서는 이런 노출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정작 코미디는 이 사건 며칠 뒤 나온 이명박 서울시장의 이른바 ‘블랙리스트’ 운운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여론이 압도적으로 이 청년들의 일탈 행위를 범죄 수준으로 몰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여론의 향방에 민감한 정치인 출신의 서울시장이 대중의 분노에 부응해 발 빠른 대책을 내놓겠다는 데야 뭐라 그러겠는가.

하지만 서울시는 하이 서울 페스티벌이다, 프린지 페스티벌이다 하는 온갖 행사와 축제의 무대에 홍익대 앞의 클럽들을 초청해 오지 않았던가? 더불어 다양한 젊은이들의 문화적 콘텐츠야말로 21세기 핵심 산업이라고 외쳐 오지 않았던가? 아무리 대중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다. 이는 21세기 한국 사회를 이끄는 지도층의 문화적 인식이 여전히 19세기에 머무르고 있음을 요약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행위를 두고 마약에 취한 정신 이상의 패륜아로 몬다거나, 나아가 인디문화 전체에 저질 퇴폐의 낙인을 찍는 것은 또 하나의 ‘거대한 폭력’이다.

이번 일은 TV에서 극히 드물게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이다. 기존 질서와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으로 출발한 록 음악과 그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펑크 신에서의 성기 노출 퍼포먼스는 길게는 40년에 이르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것이다.

자로 잰 듯한 효율성의 시대에 예술가가 옷을 벗는다는 것은 숨 막힐 듯한 합리성에 대한 근원적인 거부이자 자연 그 자체의 본능적인 회귀를 표출하려는 극한적인 표현 방식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 청년들의 ‘객기’도 그런 차원에서 조금 여유를 가지고 보면 안 되는 것일까?

특히 젊은 누리꾼들의 댓글이 이들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으로 도배되는 것은 가장 가슴 아픈 현상이다.

벌써부터 인디밴드들의 음악행사 초청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렇지 않아도 빈사 상태에 허우적거리는 인디 진영 자체가 받게 될 현실적인 타격은 매우 심각할 것이다.

정작 실망한 것은 경찰서로 끌려간 뒤 이 청년들이 보여 주었던 ‘약한’ 모습이다. 이들은 확신범일 것이다. 하지만 알몸까지 내보인 이들이 경찰 앞에서 얼굴을 숙인다는 것은 자신의 문화적 행동이 철학적 깊이가 없이 ‘그저 한번 저질러 본 난동’에 불과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강헌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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