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전문가 4인의 경험담 &경쟁력있는 교육법 좌담

  • 입력 2005년 8월 9일 03시 06분


‘대치동식 교육법’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일까. 각 교육 분야의 전문가 네 명이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에서 이에 대한 찬반 토론을 벌였다. 왼쪽부터 박혜란, 이미경, 김은실, 조석희 씨. 박영대 기자
‘대치동식 교육법’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일까. 각 교육 분야의 전문가 네 명이 4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에서 이에 대한 찬반 토론을 벌였다. 왼쪽부터 박혜란, 이미경, 김은실, 조석희 씨. 박영대 기자
《‘대치동 식으로 키울 것인가, 나만의 자녀교육법으로 키울 것인가.’ 요즘 부모들은 고민스럽다. 최신 입시정보와 유명 학원을 수소문해 자녀에게 명문대 합격에 필요한 맞춤식 교육 전략을 짜주는 ‘억척파’ 엄마들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러움과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눈높이를 조금 바꿔 보면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들이 과연 경쟁력이 있고 또 행복한 삶을 살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대치동 엄마들의 입시전략’이란 입시전략서가 화제가 된 적이 있지만 최근에는 아이들의 특기적성과 문제해결력을 길러주는 나만의 교육법을 강조한 ‘세상이 변해도 성공할 아이로 키워라’란 책도 눈길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성 교육전문가 4명의 경험담 등을 통해 올바른 자녀교육 방법은 무엇인지 함께 모색해 보는 좌담회를 가졌다.》

○ 나는 이렇게 키웠다

▽박혜란=‘엉터리 엄마’였는데 아이들이 명문대 갔다고 하니까 훌륭한 엄마라고 불리더라고요. 한 가지 해준 게 있다면 집안 여기저기 책을 쌓아두고 아이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때까지 그냥 지켜본 것밖에 없어요. 그 때는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다는 반박도 있지만 그런 말은 30년 전에도 있었어요.

▽조석희=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하시지만 학원에서 절대 가르쳐 줄 수 없는 ‘공부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겁니다. 저는 큰아들이 영어에 취미가 있는 것 같아 중학교 1학년 때 민족사관고에 데려갔더니 일기장에 “민사고에 가고 싶다”고 쓰더라고요. 대치동의 민사고 준비 학원에 보냈는데 효과가 없었습니다. 8개월을 다녀도 토플이 20점밖에 안 올라가더니 내가 집에서 같이 공부하니까 2개월 만에 60점이 더 나왔습니다. 학원에서 배운 건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것밖에 없어요. 민사고를 1년 다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공부 중입니다.

▽이미경=직장까지 그만두면서 큰애를 끼고 가르쳤는데 초등학교까지는 너무 잘했어요.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떨어지는 겁니다. 너무 미워서 그냥 내버려뒀더니 혼자 공부하는 습관이 안돼 스스로 무너졌어요. 고교 1학년부터 3년간 같이 공부했지만 좀 늦었습니다.

둘째는 일부러 약간 방치했더니 자기 주도적이고 스스로 공부에 욕심을 갖게 됐습니다. 둘째의 경우 난 돌상만 차려주고 아이가 알아서 원하는 물건을 고르도록 한 셈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대치동 경시전문 학원에 보냈고 과학고에도 합격했습니다. 최근에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은상을 탔습니다.

▽김은실=아이가 원할 때 원하는 학원에 보내 효과를 봤어요. 초등학교 때까지 반에서 상위권이던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반에서 17등을 했어요. “엄마, 이제 더 이상 혼자서 못하겠어” 하면서 자기가 알아본 학원에 가겠다고 해요. 내심 대치동에 찍어둔 학원이 있었지만 아이의 선택에 맡겼죠. 이번 기말고사에서 전교 7등을 했어요.

○ 대치동 교육법은 만능인가

▽김=대부분 엄마들은 전교 1등이 다니는 학원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하죠. 그래서 학원들이 전교 1등 모시기 경쟁을 합니다. 그러나 대치동식 교육법은 상위 4%의 아이들에게나 효과가 있을 겁니다. 능력이 안 되는 아이에게 억지로 적용시키는 건 학대에 가깝죠. 우선 자녀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조=한 외국 연구소에서 ‘한국 아이들은 아동기를 빼앗기나’라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어요. 핀란드 아이들보다 공부 시간이 60% 더 많다는 거예요. 영재교육 전문가로서 어려서부터 엄마의 욕심대로 순응했다가 망가진 아이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부모는 아이가 재능이 없으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방식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해요.

○ 원할 때 필요한 것을 해줘라

▽이=큰아이를 제 욕심대로 키우면서 정말 걸음마를 가르쳐야 한다고 깨달았어요. 학교 공부뿐 아니라 좋다는 학원, 과외공부 다 시켜봤는데 욕심을 갖고 혼자 하지 않으면 절대 늘지 않아요. 어려서 말이 늦어 아는 의사에게 데려갔더니 “나라도 안 하겠다”고 말해 깜짝 놀랐어요. 아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주니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부모 욕심대로 억지로 끌고 가면 탈이 납니다.

▽김=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도서관에 가서도 일부러 책을 일주일에 한 권씩만 빌리게 한답니다. 아이들이 책을 간절히 원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조=둘째아이가 학교에 갔다 올 때마다 화를 낸 적이 있어요. 공부 못하는 애들이 그렇듯 학습태도가 엉망이더라고요. 그 뒤로 아이한테 계획표부터 세우게 하고 실천하는지 체크했더니 훨씬 좋아졌습니다. 관심과 간섭은 달라요. 늘 관심을 가졌고 간섭하지 않았을 뿐이었죠.

▽박=돌이켜 생각해 보면 집에 책이 많았던 게 가장 큰 자극이었던 같아요. 화장실에도, 식탁에도, 마루에도 책이 널려 있었죠. 8세 때 카를 마르크스 사진을 보고 “마르크스 할아버지다”라고 알아본 것도 어릴 때 경험이 밑거름이 됐을 겁니다.

○ 명문대가 지상목표?

▽김=제가 사교육 전도사처럼 됐지만 현실을 어느 정도 인정할 필요는 있습니다. 대학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현실에서 엄마와 아이들의 성공의 잣대는 명문대 입학이고 그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평준화가 문제예요. 보통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학교 교사들은 올림피아드에 대한 정보를 알기 힘들고 그러다 보니 학원의 힘을 빌리게 됩니다. 교사 탓이 아닙니다. 획일화할 필요는 없지만 능력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더 있어야 합니다.

사설 입시학원이 최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개최한 대학입시전략 설명회에서 학부모와 학생이 진지한 표정으로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조=자녀교육을 대입에만 맞추는 건 근시안적이에요. 상위 0.3%에 드는 중학교 영재들에게 물어봤더니 ‘부모에게 가장 배우고 싶은 것’으로 시간관리 능력을 꼽았어요.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배우질 않은 것이죠. 공부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이를 의미 있게 활용하는 꿈을 키워 볼 기회가 없었던 겁니다.

▽박=농담 같지만 요즘 애들은 결혼할 때 후보 5명을 골라줘야 하나를 찍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걸 부모가 해주니 덩치만 큰 어린애로 자란 겁니다. 부모가 언제까지 자식 애프터서비스를 할 수는 없잖아요.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자기가 취미에 맞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그게 경쟁력 있는 교육법이 아닐까 합니다.

정리=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 박 혜 란=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대표. 가수 ‘이적’ 등 삼형제를 서울대 보냄.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저자.

○ 이 미 경=서울과학고 학교운영위원장. 장남 고려대 2학년, 차남 서울과학고 3학년.

○ 김 은 실=‘대치동 엄마들의 입시전략’의 저자. 초등 2학년 딸, 중2 아들을 둠.

○ 조 석 희=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센터소장. 중3, 고2 두 아들 미국 유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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