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이렇게 키웠다
▽박혜란=‘엉터리 엄마’였는데 아이들이 명문대 갔다고 하니까 훌륭한 엄마라고 불리더라고요. 한 가지 해준 게 있다면 집안 여기저기 책을 쌓아두고 아이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때까지 그냥 지켜본 것밖에 없어요. 그 때는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다는 반박도 있지만 그런 말은 30년 전에도 있었어요.
▽조석희=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하시지만 학원에서 절대 가르쳐 줄 수 없는 ‘공부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겁니다. 저는 큰아들이 영어에 취미가 있는 것 같아 중학교 1학년 때 민족사관고에 데려갔더니 일기장에 “민사고에 가고 싶다”고 쓰더라고요. 대치동의 민사고 준비 학원에 보냈는데 효과가 없었습니다. 8개월을 다녀도 토플이 20점밖에 안 올라가더니 내가 집에서 같이 공부하니까 2개월 만에 60점이 더 나왔습니다. 학원에서 배운 건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것밖에 없어요. 민사고를 1년 다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공부 중입니다.
▽이미경=직장까지 그만두면서 큰애를 끼고 가르쳤는데 초등학교까지는 너무 잘했어요.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떨어지는 겁니다. 너무 미워서 그냥 내버려뒀더니 혼자 공부하는 습관이 안돼 스스로 무너졌어요. 고교 1학년부터 3년간 같이 공부했지만 좀 늦었습니다.
둘째는 일부러 약간 방치했더니 자기 주도적이고 스스로 공부에 욕심을 갖게 됐습니다. 둘째의 경우 난 돌상만 차려주고 아이가 알아서 원하는 물건을 고르도록 한 셈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대치동 경시전문 학원에 보냈고 과학고에도 합격했습니다. 최근에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은상을 탔습니다.
▽김은실=아이가 원할 때 원하는 학원에 보내 효과를 봤어요. 초등학교 때까지 반에서 상위권이던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서 반에서 17등을 했어요. “엄마, 이제 더 이상 혼자서 못하겠어” 하면서 자기가 알아본 학원에 가겠다고 해요. 내심 대치동에 찍어둔 학원이 있었지만 아이의 선택에 맡겼죠. 이번 기말고사에서 전교 7등을 했어요.
○ 대치동 교육법은 만능인가
▽김=대부분 엄마들은 전교 1등이 다니는 학원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하죠. 그래서 학원들이 전교 1등 모시기 경쟁을 합니다. 그러나 대치동식 교육법은 상위 4%의 아이들에게나 효과가 있을 겁니다. 능력이 안 되는 아이에게 억지로 적용시키는 건 학대에 가깝죠. 우선 자녀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합니다.
▽조=한 외국 연구소에서 ‘한국 아이들은 아동기를 빼앗기나’라는 보고서를 낸 적이 있어요. 핀란드 아이들보다 공부 시간이 60% 더 많다는 거예요. 영재교육 전문가로서 어려서부터 엄마의 욕심대로 순응했다가 망가진 아이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부모는 아이가 재능이 없으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방식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해요.
○ 원할 때 필요한 것을 해줘라
▽이=큰아이를 제 욕심대로 키우면서 정말 걸음마를 가르쳐야 한다고 깨달았어요. 학교 공부뿐 아니라 좋다는 학원, 과외공부 다 시켜봤는데 욕심을 갖고 혼자 하지 않으면 절대 늘지 않아요. 어려서 말이 늦어 아는 의사에게 데려갔더니 “나라도 안 하겠다”고 말해 깜짝 놀랐어요. 아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주니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부모 욕심대로 억지로 끌고 가면 탈이 납니다.
▽김=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도서관에 가서도 일부러 책을 일주일에 한 권씩만 빌리게 한답니다. 아이들이 책을 간절히 원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조=둘째아이가 학교에 갔다 올 때마다 화를 낸 적이 있어요. 공부 못하는 애들이 그렇듯 학습태도가 엉망이더라고요. 그 뒤로 아이한테 계획표부터 세우게 하고 실천하는지 체크했더니 훨씬 좋아졌습니다. 관심과 간섭은 달라요. 늘 관심을 가졌고 간섭하지 않았을 뿐이었죠.
▽박=돌이켜 생각해 보면 집에 책이 많았던 게 가장 큰 자극이었던 같아요. 화장실에도, 식탁에도, 마루에도 책이 널려 있었죠. 8세 때 카를 마르크스 사진을 보고 “마르크스 할아버지다”라고 알아본 것도 어릴 때 경험이 밑거름이 됐을 겁니다.
○ 명문대가 지상목표?
▽김=제가 사교육 전도사처럼 됐지만 현실을 어느 정도 인정할 필요는 있습니다. 대학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현실에서 엄마와 아이들의 성공의 잣대는 명문대 입학이고 그 가능성을 극대화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평준화가 문제예요. 보통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학교 교사들은 올림피아드에 대한 정보를 알기 힘들고 그러다 보니 학원의 힘을 빌리게 됩니다. 교사 탓이 아닙니다. 획일화할 필요는 없지만 능력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더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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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녀교육을 대입에만 맞추는 건 근시안적이에요. 상위 0.3%에 드는 중학교 영재들에게 물어봤더니 ‘부모에게 가장 배우고 싶은 것’으로 시간관리 능력을 꼽았어요.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은 배우질 않은 것이죠. 공부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이를 의미 있게 활용하는 꿈을 키워 볼 기회가 없었던 겁니다.
▽박=농담 같지만 요즘 애들은 결혼할 때 후보 5명을 골라줘야 하나를 찍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걸 부모가 해주니 덩치만 큰 어린애로 자란 겁니다. 부모가 언제까지 자식 애프터서비스를 할 수는 없잖아요.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자기가 취미에 맞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그게 경쟁력 있는 교육법이 아닐까 합니다.
정리=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 박 혜 란=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대표. 가수 ‘이적’ 등 삼형제를 서울대 보냄.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저자.
○ 이 미 경=서울과학고 학교운영위원장. 장남 고려대 2학년, 차남 서울과학고 3학년.
○ 김 은 실=‘대치동 엄마들의 입시전략’의 저자. 초등 2학년 딸, 중2 아들을 둠.
○ 조 석 희=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센터소장. 중3, 고2 두 아들 미국 유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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