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장기기증 김상진씨 유가족 - 수혜자 5명 첫 만남

  • 입력 2005년 9월 5일 03시 02분


코멘트
3일 서울 영등포구 롯데시네마에서 사랑의 장기운동본부 주선으로 장기기증자 유가족과 수혜자가 만났다. 장기(심장)를 기증 받은 박정구 씨(오른쪽)가 장기를 기증한 뒤 사망한 김상진 씨의 어머니 박기월 씨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다. 전영한 기자
3일 서울 영등포구 롯데시네마에서 사랑의 장기운동본부 주선으로 장기기증자 유가족과 수혜자가 만났다. 장기(심장)를 기증 받은 박정구 씨(오른쪽)가 장기를 기증한 뒤 사망한 김상진 씨의 어머니 박기월 씨에게 큰절을 올리고 있다. 전영한 기자
“상진이는 갔지만 여러분이 계시기에 아주 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아픈 눈물이 기쁨의 눈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3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롯데시네마 1관. 국내에서 처음으로 장기 기증 유가족과 장기 이식 수혜자가 만났다.

“참으로 잘생겼는데….”

장기를 기증한 김상진(사망 당시 31세) 씨의 어머니 박기월(54) 씨는 단상에 오르기 전 아들의 생전 모습이 영상으로 소개되자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쏟아냈다.

고 김상진 씨
단상에서 분홍색 장미꽃을 들고 박 씨를 기다리던 박정구(47·심장 이식) 임명순(46·여·췌장 이식) 이상신(33·간 이식) 엄경희(44·여·신장 이식) 윤옥희(36·여·신장 이식) 씨 등도 충혈된 눈으로 입술을 지그시 물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기를 몇 분, 이들은 “당신이 있었기에 오늘 제가 여기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일제히 오열을 했다.

김상진 씨. 결혼 두 달 만인 지난해 11월 29일 뇌동맥류 파열로 갑자기 쓰러진 그는 뇌사상태에 빠졌다. 김 씨는 생전의 장기 기증 서약에 따라 같은 해 12월 2일 모두 7명에게 자신의 남은 생명을 나눠준 뒤 31년의 삶을 접었다.

그가 죽어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생전에 ‘뇌사 시 장기 기증’ 서약을 한 8만여 명 가운데 서약을 지킨 첫 번째 기증자였기 때문.

김 씨로부터 심장을 이식받아 새 삶을 얻게 된 박정구 씨는 김 씨의 어머니 박 씨에게 큰절을 올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박 씨도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 같다”며 박정구 씨를 부둥켜안았다.

박정구 씨는 이날 자신도 뇌사 시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서약서를 썼다.

신장을 이식받은 윤옥희 씨는 “올해 3월부터 매일 한국신장장애인협회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며 “김상진 씨 덕분에 더 이상 치료받지 않아도 돼 앞으로 남은 시간은 남을 위해 쓰겠다”고 다짐했다.

“장기를 떼어내고 마지막으로 만난 상진이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편안해 보이더군요. 서로 의지하면서 열심히 살아주세요. 상진이가 바라는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먼저 간 아들을 대신해 맑은 삶을 당부한 뒤 돌아서는 어머니 박 씨의 등은 어느 때보다 넉넉해 보였다.

이날 만남은 양측 모두 공익광고를 통해 신원이 알려진 데다 서로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혀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장기이식센터의 허락하에 이뤄졌다.

장기 기증 수혜자와 기증자 유가족의 만남은 불법적인 장기매매 방지를 위해 엄격히 규제되고 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