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자촌에서 도매 유통의 메카로
청계천의 변화는 한국 근대경제사의 발전과 궤(軌)를 같이한다. 조선시대 후기 청계천 주변은 종로에 형성된 시전(市廛)의 배후지로 수공업 작업장이 들어서고 상인들의 주거지가 자리를 잡았다. 6·25전쟁 이후 1950년대 중반까지 청계천에는 피란민의 판자촌이 겹겹이 형성됐다. 그러나 1958년 복개 공사가 시작되고, 1971년 청계고가도로가 세워지면서 이곳은 근대화의 상징으로 변신했다. 도심인데도 임대료가 싼 이점을 살려 도매 유통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청계3가부터는 공구상과 전기상, 청계5가부터는 의류 도매상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종로5가 쪽 대형 약국을 시작으로 동대문 옆 골목 서적 도매상, 창신동의 문구·완구류 도매상들이 개미굴 같은 골목길을 따라 수도 없이 생겨났다.
1960, 70년대 청계천은 노동자의 아픔을 잉태한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의 한 축이었으며, 1980, 90년대에는 상인들의 ‘엘도라도’였다. 1980년대 말에는 1년 순익이 1억 원을 넘는 가게도 적지 않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청계천 주변의 도소매업소는 2000년 현재 8만3000여 개로 서울시 전체의 11%이며 이곳에서 생계를 꾸려 나가는 사람은 38만2000여 명이다.
○새로운 청계천 시대가 온다
청계천의 핵심 상권 중 하나인 세운상가 상인들은 1987년 이후 새로 조성된 용산전자상가로 대거 이주했다. 컴퓨터 통신이 발달하고 물류 시스템이 정교해지면서 청계천을 찾는 기업과 상인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하지만 1990년대 동대문 주변에 ‘두타’ ‘프레야 타운’ ‘밀리오레’ 등 현대식 대형 중저가 패션몰이 잇달아 생기면서 청계천은 다시 중흥기를 맞는다. 지방 상인은 물론 중국 러시아에서 몰려온 보따리 상인들이 엄청난 물량을 실어갔다.
이제 10월이면 청계천 상권은 보행자 중심으로 바뀐 도로에 적응해야 하므로 변화가 불가피하다.
동대문 주변 패션몰은 청계천 복원을 상권을 되살릴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프레야 타운’은 상호를 청계천과 동대문을 결합한 ‘청대문’으로 바꿔 새롭게 출발하기로 했으며 ‘두타’는 청계천에 산책 나오는 사람들을 겨냥해 아웃도어 전문매장을 크게 늘렸다.
평화, 청평화 등 재래식 도매시장은 1층 상가의 소매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외식업체들도 앞 다퉈 청계천에 진출하고 있다. 도심 상권의 최대 약점인 주말에도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창업경영연구소 이인호(李仁浩) 소장은 “청계천 물줄기를 따라 다양한 먹을거리 점포가 생겨나면서 외식업 상권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거 공간도 크게 바뀐다. 세운상가, 황학동, 왕십리에는 첨단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선다. 청계천을 조망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재건축 재개발 사업도 탄력을 받고 있다.
○현실과 기대 사이
청계천 주변은 향후 18개 블록으로 나뉘어 개발된다. 상가의 4분의 1가량은 이미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청계천 복원에 따른 기대감은 부동산 값 상승에서도 드러난다.
서울시가 최근 2년간의 땅값 및 임대료를 분석한 결과 강남 테헤란로 주변은 17% 오른 반면 청계천변은 평균 40% 급등했다. 대형 외식업체들이 점포 물색에 나서면서 상가 임대료도 오르는 추세다.
동대문관광특구협의회 송병열(宋秉烈) 사무국장은 “유동 인구가 늘어나면서 평화시장, 두타 등 패션몰 매출이 10∼20%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의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과제도 남아 있다.
연세대 김갑성(金甲星·도시공학) 교수는 “청계천 상권의 명성은 수많은 ‘청계천 사람’이 만들어 낸 역동성에서 비롯됐다”며 “청계천 주변 전문상가가 떠나면 이런 역동성은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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