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영국 BBC가 최초의 정규 방송을 한 지 올해로 꼭 70년, 이제 TV는 제2의 혁명을 맞고 있다. 고화질 화면에 쌍방향 서비스로 개인별 맞춤화가 가능해졌고 휴대전화를 이용한 ‘내 손 안의 TV’는 이미 본방송을 하고 있다. 텔레비전은 공중파, 유선, 위성, 컴퓨터의 기술적 벽을 넘어섰고 풍요의 TV에는 국적이 사라진 지 오래다.
3일은 ‘방송의 날’이었다. 국제전기통신연맹으로부터 한국의 방송 호출부호(HL)를 부여받은 것을 기념해 이날을 방송의 날로 정하였다. 많은 특집 프로그램과 행사를 마련하고 방송인들은 각오를 새롭게 했다. 공정 보도를 다짐하고 건전한 오락을 약속하고 사회적 책무를 되새기는 날이었다.
그렇다면 방송인들의 각오처럼 우리 텔레비전은 매년 새로워지고 있는가? 디지털 사옥처럼 프로그램의 질도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불균형을 ‘문화 지체’라고 말한다. 사옥의 규모는 세계적이고 장비와 기술은 최첨단을 걷고 있지만 그것을 운용해 만든 프로그램의 수준이 이를 뒤쫓지 못할 때, 문화지체 현상은 불가피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타블로이드 TV’, 즉 TV의 주간지화다. 가십, 스캔들, 치정, 살인 등 흥미만 좇는 아이템이 화면에 넘쳐난다. 수다와 잡담, 심지어 엽기도 우리 TV의 단골 메뉴이다.
5일 아침 SBS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생방송 연예특급’은 공공의 재산이 사물화(私物化)된 구체적 사례이다. ‘가수 인순이 모친상’이 그러했고 ‘전격 취재 이혜영 이혼 후 첫 심경고백’이 그러했다. 연예인 역시 공인의 범주에 든다. 많은 국민의 관심사가 될 수 있다 해도 월요일 아침부터 ‘사생활 엿보기’를 내세워야 했을까.
지난달 말 EBS가 연속 방송한 다큐멘터리 ‘인간과 TV’는 우리 삶에 있어 TV는 무엇인가 하는 진지한 물음을 던져주었다. TV는 ‘와와산’(인도네시아어로 ‘식견’이라는 뜻)을 넓혀 주고 오락을 제공하고 바깥 세계를 보는 창의 구실을 한다. 동시에 TV는 현실 도피를 조장하고 시간 낭비를 초래하며 사람들을 마취시킨다. ‘인간과 TV’의 실험에서 보았듯이 TV 없는 세계는 잃었던 가족을 찾게 해주고 자녀와 부모의 대화를 촉진시키며 스포츠와 독서, 취미 생활을 윤택하게 만든다.
TV는 사라지지 않는다. TV는 더 큰 영향력으로 우리를 옭아맨다. 반공영적인 공영방송, 반교육적인 교육방송, 사물화된 TV 화면을 어떻게 하면 더욱 정화할 수 있을까. 답은 하나다. “좋은 시청자가 좋은 텔레비전을 만든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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