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남편이 귀가하던 시간인 오후 10시경만 되면 대문을 쳐다보게 된다.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죽은 현장을 보고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은 딸들도 이 시간만 되면 신경이 예민해진다.
“내가 크면 우리 아빠 죽인 애들 가만두지 않을 거야.”
큰딸 우희(12)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렇게 소리치곤 한다.
“아빠가 좋은 일 한 거야”라고 말하는 이 씨의 목소리엔 힘이 없다. 둘째 딸 현정(10)이는 엄마와 언니 눈치만 살핀다.
“솔직히 저도 그 아이들이 원망스러워요. 왜 하필 제가 그 광경을 봤는지…. 마지막으로 봤던 남편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한데….”
이 씨는 캠퍼스 커플인 신명철(42) 씨와 4년 열애 끝에 1992년 결혼했다. 2년 전 섬유업체를 차린 신 씨는 불경기 속에서도 제법 일감이 있어 올여름 휴가까지 포기했다.
휴가를 못 가 가족들에게 미안했던 신 씨는 지난달 14일 광복절 연휴에 아내와 딸들을 데리고 강원 홍천군의 수타사 계곡을 찾았다. 신 씨 부부는 자매가 물놀이하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계곡 상류 쪽으로 올라갔다.
딸들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 2명이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 오고 있었다. 이를 본 이 씨가 소리쳤다. “저러다 큰일 나겠어!”
신 씨는 곧장 계곡 물에 뛰어들어 아이들을 밖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자신은 물살에 휩쓸려 수심이 깊은 곳까지 떠내려갔고 순식간에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불과 5분도 안 되는 사이에 한 가정이 무너져 내렸다.
“정말 무심하더라고요.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면서도 어느 누구 하나 도와주질 않았으니….” 계곡 주변엔 수백여 명의 행락객이 있었다.
전업 주부였던 이 씨는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해 며칠 전 남편의 승용차를 팔았다. 앞으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하기만 하다.
이 씨는 당장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추석이 걱정이다. 아직 남편이 숨진 사실을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데다 혈압까지 높은 시어머니(72·전북 정읍시)에게 말하지 못했기 때문. 그는 “추석엔 시댁에 못갈 것 같다”면서 “시어머니에게 남편이 출장을 갔다고 둘러댈 생각”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신 씨를 의사자(義死者)로 인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의사자로 인정되면 1억7000여만 원의 보상금과 의료비, 교육비 등을 지원받는다.
하지만 8일 기자를 만난 이 씨는 “남편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수 있느냐”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한편 남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의사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2000년 이후 114명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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