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돈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뒷면에 문구 하나가 눈에 띈다.
‘In God We Trust(신이여, 당신을 믿나이다).’
이 문구는 지폐, 동전 가릴 것 없이 미국 화폐에 공통으로 등장한다. 미국을 제외하면 화폐에 종교 문구가 삽입된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 화폐에 종교 문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860년대 초반. 당시 미국인들은 독립전쟁에 이어 남북전쟁까지 치르면서 지쳐 있었다. 펜실베이니아의 한 목사가 재무장관에게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무시무시한 전쟁들을 경험했습니다. 매일 지니고 다니는 화폐에 신의 가호를 새겨 넣는다면 전쟁의 처참함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인들도 열렬하게 호응했다. 의회는 여러 차례 논의한 끝에 ‘신이여, 당신을 믿나이다’라는 문구로 결정했다. 1864년 이 문구는 미국 동전에 새겨졌다.
미국 지폐에 이 문구가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채 50년도 안 된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1957년 10월 1일 동전과 똑같은 문구가 새겨진 지폐가 처음 발행됐다.
이 문구의 지폐 삽입은 미국 국훈(國訓) 제정과 때를 같이한다. 1956년 미 의회는 이전 국훈이었던 ‘E Pluribus Unum(여러 갈래가 모여 하나가 된다는 의미의 라틴어)’을 버리고 ‘신이여, 당신을 믿나이다’ 문구를 국훈으로 채택했다.
그 배경에는 소련과의 이념 대결이 숨어 있다. 미국 지도층은 무신론을 신봉하는 소련 공산주의를 압도하고자 종교 냄새가 물씬 풍기는 문구를 국훈으로 선택한 것이다.
달러화를 잘 살펴보면 이 문구가 꺼멓게 지워진 지폐와 동전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문구 폐지론자들은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이 문구를 지우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이 문구에 등장하는 ‘신’이 특정 종교(개신교)의 신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미국 법원은 이 문구가 단순한 ‘애국적 표현’이라며 찬성론자의 손을 들어 줬다.
최근 미국 내 진보-보수 대립이 격화되면서 화폐를 둘러싼 정교(政敎)분리 논란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무색무취의 돈. 실은 사상 대결의 치열한 싸움터인 것이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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