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맘’ 이경순(33·서울 광진구 자양동) 씨는 이혼 후 선경(11), 선훈(9), 란희(4) 삼남매와 새 인생을 살고 있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25만 원짜리 반지하방이지만 이 씨의 집에는 언제나 햇살이 비친다.
“남편이 술 먹고 들어오는 날엔 무조건 어디론가 도망가야 했어요. 눈에 보이는 것마다 닥치는 대로 부수고 위협하고…. 한겨울에 자는 아이를 급히 깨워 도망치듯 집을 나오곤 했으니까요.”
이 씨는 지금 인근 사회복지관에서 오전 9시∼오후 6시 발달장애 학생을 돌봐주는 일을 하고 있다. 한 달 수입은 이 씨가 복지관에서 받는 돈과 정부 지원금을 합해 115만 원.
항상 부족한 살림이지만 아껴 쓰고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 지금까지 빚도 지지 않고 있다.
“아이들에게 당당하고 떳떳한 엄마가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그래서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고, 지금은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엄마가 책 읽고 공부하니까 애들도 제 곁에 앉아 책을 읽어요. 그 모습 보고 있으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저소득과 사회적 소외감에 시달리는 싱글 맘들. 그러나 소수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억척같이 사는 어머니들도 있다.》
▽“나는 당당한 싱글 맘”=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둘이 살고 있는 최정윤(38·서울 용산구 후암동) 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싱글 맘이라는 걸 숨기지 않는다.
최 씨는 “싱글 맘이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난받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처한 상황을 원망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생을 가꾸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싱글 맘이 된 후 일부러 친구를 더 많이 만들었다.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이들은 최 씨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었다. 또 아이가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축구경기 관람도 하고, 인라인스케이트도 타러 다녔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싱글 맘들끼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양육 정보를 주고받고, 서로 ‘멋진 싱글 맘’이라고 격려도 해 준다.
경기 고양시 일산의 김모(56) 씨도 본보 기사가 나간 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혼자 된 후 18년간 아들을 키워 왔지만 한 번도 내가 사회의 그늘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이제 고3인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나도 아이 학교 운영위원장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했다.
▽‘홀로서기’ 도와줘야=싱글 맘이 그늘 속에서 사느냐, 아니냐의 기로는 결국 취업문제로 귀결된다.
평균 30대 중반의 나이로 특별한 기술도 없는 이들이 직장을 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은 주로 간병, 요리 등에 국한돼 있어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엔 한계가 있다.
본보와 한국한부모가정연구소의 이번 심층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직업교육이 충실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부족하다’는 답변이 54.9%를 차지했고 ‘충실하다’는 답변은 7.8%에 그쳤다.
정부가 저소득 싱글 맘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생업자금과 복지자금 대출을 받은 경우도 극히 드물었다. 정부지원 자금 대출을 받은 적이 있는 싱글 맘은 불과 12.5%.
기본적으로 지원하는 각종 항목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고, 대출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경제 수준을 지닌 연대보증인이 있어야 하는데 싱글 맘의 경우 보증인을 구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
한동대 황혜리(黃慧利·교육심리학) 교수는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업 재훈련에 도움을 줘야 하고,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진학에 대한 기회도 부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음의 문’을 열어 줘야=싱글 맘들은 남편과의 사별이나 이혼 후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기간에는 대개 외부와 성벽을 쌓고 자기 자신을 자책하거나 세상을 원망한다.
전문가들은 싱글 맘의 심리상태가 고스란히 자녀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싱글 맘을 배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싱글 맘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정보를 주고받고, 격려를 해주는 역할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만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싱글 맘, 싱글 대디 가구의 비율이 20%를 넘는 외국과 달리 아직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화여대 함인희(咸仁姬·사회학) 교수는 “‘부모 중 한쪽이 없이 자란 아이들은 문제가 있다’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이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며 “‘한 부모 가정’도 다양한 종류의 가족형태 중 하나라고 인식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선진국의 싱글 맘 지원▼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의 모자가정(싱글 맘)에 대한 대책은 전반적인 가족·복지정책의 차원에서 시행된다. ‘한 부모 가정’을 다양한 유형의 가족 중 하나로 인정하고 있는 것.
독일연방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3년 독일의 한 부모 가정은 150만 가구에 이른다. 이 중 싱글 맘의 비율은 82%에 이르며 사유는 이혼이 42%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독일에서 한 부모 가정이라는 것이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정부에서는 한 부모 어머니에게 직업을 알선해 주고 아동 위탁을 지원한다. 저소득(월 679∼819유로·약 85만∼102만 원)으로 자녀양육이 어려울 경우 매달 140유로(약 17만5000원)가 추가 지급된다. 월 소득이 819유로가 넘을 경우도 20∼60유로(약 2만5000∼7만5000원)의 월세 지원비를 받는다.
1∼3자녀까지 한 명당 154유로(약 19만3000원), 넷째부터는 179유로(약 22만4000원)를 지원한다. 한 부모가 소득이 없거나 저소득일 경우 자녀가 만 12세가 될 때까지 매달 111∼151유로(약 13만9000∼18만9000원)를 지급한다.
일본의 경우 싱글 맘(대디)에 대한 아동육성수당으로 매달 1만3500엔(약 12만3000원)을 지급하고 의료비도 무료. 싱글 맘 가정에 대한 방문간호사업과 공영주택에 우선 입주할 권리도 주어진다.
미국은 1964년부터 한 부모 가정에 식품 구입권을 지급하는 ‘푸드 스탬프 제도’를 도입했다. 2004년부터 17세 이하의 아동을 가진 한 부모 가정에 연간 최고 1000달러(약 100만 원)까지 세금을 되돌려 준다.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공동부담해 의료서비스도 제공한다.
서울복지재단 이용복(李蓉馥) 책임연구원은 “외국에서는 경제적 지원과 함께 종교 상담 및 자원봉사자 네트워크 등을 통해 한 부모 가정의 사회 적응을 돕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이 같은 정책을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선진국의 모자가정을 위한 복지정책 | |
국가 | 복지정책 |
독일 | 직업 알선, 아동 위탁 지원, 무보수 보호노동 시간(자녀 양육으로 인해 발생한 기본 노동시간 부족분) 보전, 세 살 이상 유치원 교육 지원, 3년간 모성휴가 인정 |
프랑스 | 1970년부터 고아수당 지급, 1976년부터 모자가정 수당 지급 |
스웨덴 | 아동보육서비스(어린이집 등) 이용 우선권 부여, 모자가정의 70% 이상이 수당이나이전 소득을 지원받음, 소득의 75%를 보상해 주는 가족휴가제 |
영국 | 모자가정의 63%가 생계비 아동수당 가족수당 등의 국가보조를 받음 |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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