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맛있게 드세요.” “오늘도 고생이 많구먼.” 자원봉사자들은 개신교 노숙자 선교단체인 ‘거리의 천사들’(거천·대표 섬기미 안기성 목사)의 회원들. 이에 앞서 봉사자들은 11일 오후 11시경 서울 종로구 이화동 섬김의 집에 모여 안 목사의 인도로 간단한 기도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승합차 2대에 나눠 타고 을지로3가역, 을지로2가역, 을지로입구역, 한국프레스센터 앞 지하도, 종각역 등 5곳의 노숙자들을 찾아 봉사활동을 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거리로 내몰린 실직 노숙자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시작된 거천의 야간 사역(使役)이 8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토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3시까지 서울 도심의 지하도 노숙자들을 찾아가 식사를 대접하며 생필품을 제공하고 상담을 통해 가정과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해오고 있는 것.
700여 명의 봉사 회원이 35개 팀을 이뤄 하루 평균 20명이 야간 사역에 참여한다. 봉사자들은 초등학생부터 중고교생, 대학생, 직장인, 노인 등 다양하다. 이들이 하룻밤에 돌보는 노숙자는 5곳의 300여 명으로 서울 시내 노숙자의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11일 밤 봉사에 참가한 동산교회(서울 강남구 포이동) 청년회원인 박선민(19·한국외국어대 1년) 씨는 “노숙자 아저씨들이 감동받는 걸 보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4년째 매주 이 일을 해 왔다는 마포교회 청년회원 진무두(29·정보기술업) 씨는 “노숙자들은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을 가질 때 원상회복이 빠르다”고 말했다.
거천은 8년 동안 이 일을 해 오면서 많은 노숙자를 일으켜 세웠다. 7년간 노숙하다가 일자리를 찾은 뒤 봉사자로 나선 사람, 강원 홍천군으로 가 농부가 돼 첫 농사에서 수확한 쌀 한 포대를 보내온 사람, 1년 노숙한 뒤 직장을 찾아 첫 월급에서 떼어 10만 원의 성금을 내놓은 사람 등 다양하다.
안 목사는 “‘거리의 천사’란 노숙자와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 모두를 일컫는 말”이라며 “실질적으로는 노숙자보다 봉사자가 훨씬 더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거천은 노숙자들의 고충을 상담하고 아픔을 달래 주는 ‘희망의 전화’(02-766-6336)도 24시간 운영한다. 누구나 자원봉사 외에 소액 헌금이나 물품으로도 후원할 수 있다. www.st1004.net, 02-744-8291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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