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 독자인권위 좌담]주제:심은하씨 결혼보도

  • 입력 2005년 10월 1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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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유의선, 최현희 위원, 김일수 위원장, 이지은 위원. 박영대  기자
왼쪽부터 유의선, 최현희 위원, 김일수 위원장, 이지은 위원. 박영대 기자

《인기 연예인은 공인(公人)이므로 사생활의 상당 부분에 대한 보도가 허용된다는 것이 법원 판례이자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러면 연예인의 가족 등 주변 인물도 사생활 침해를 감수해야 하는가. 영화배우 심은하(33) 씨가 지상욱(40·연세대 국제대학원 연구교수) 씨와 18일에 결혼한다는 사실이 지난달 일제히 보도됐다. 지 교수는 집 근처에 진을 친 기자들을 피하느라 귀가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일부 신문에 재벌가 딸과의 이혼 전력과 부친의 군 경력 및 대인 관계까지 공개되자 명예가 훼손됐다며 법적 대응을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14일 ‘연예인 가족의 사생활 보도’에 대해 토론했다.

사회=육정수 본보 독자서비스센터장》

―심은하 씨 측의 결혼 발표 이후 한 신문에 결혼 상대자인 지 교수와 그 부친의 사생활 내용이 상세하게 공개됐는데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김일수 위원장=심 씨 정도의 인기 배우라면 결혼 상대자의 학력이나 경력은 충분히 보도할 수 있다고 봐야지요. 하지만 인물 사진은 초상권 침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본인 동의를 받는 것이 합당합니다. ‘심은하의 남편이 되겠다’는 것과 ‘얼굴이 공개돼도 괜찮다’는 것은 별개입니다. 더구나 이혼 전력과 부친의 경력, 대인 관계까지 공개한 대목은 프라이버시 침해 사례로 판단됩니다. 공익을 위해 공유해야 할 진실이라면 알 권리 차원에서 허용되지만 단순한 호기심 충족을 위한 내용은 그렇지 않다고 봐야 합니다.

▽이지은 위원=심 씨는 비록 은퇴했다 해도 공인의 지위를 벗어날 수 없겠지만, 결혼 상대자인 지 교수의 초상권까지 같은 비중으로 다룰 문제는 아니겠죠. 이번 토론 소재를 생각하면서 ‘국민배우’로 불리는 안성기 씨가 잠시 떠올랐습니다. 가정이 화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부인의 얼굴이 공개된 것을 본 적이 없어요. 심은하 씨의 결혼 보도와 단적으로 비교됩니다. 공인인 연예인과 결혼한다고 해서 상대방도 사실상 공인으로 간주하는 보도는 공사(公私) 영역의 구분이 모호한 우리 사회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의선 위원=저는 의견이 조금 다릅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의 보도는 알 권리에 부합한다고 봅니다. 뉴스 가치의 중심에 섰을 때 알 권리가 성립한다고 본다면 화제의 대상에 들지 못한 안성기 씨 부인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요. 심 씨와의 결혼 발표로 지 교수도 상당 수준의 사생활 보도가 허용되는 ‘준(準)공인’의 범주에 진입했으니 알 권리 차원에서 스스로 감내해야 합니다. 정치적 공익 못지않게 사회 문화적 공익, 심지어 상업적 공익도 중요한 만큼 알 권리와 인격권 보호라는 두 저울추의 이익을 비교해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요. 언론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은 필요하다는 점에서 악의적 고의적으로 인격권을 현저하게 저해하지 않는 한 언론의 자유는 포괄적으로 허용돼야 합니다.

▽최현희 위원=심 씨의 경우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려 온 데다 결혼 발표도 떠도는 풍문을 피하려고 서두른 인상이 역력합니다. 취재 내용을 일방적으로 보도하기보다 당사자의 의사를 담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직접 인터뷰를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시도를 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결혼 상대자의 내밀한 이혼 사유와 부친의 사생활을 들먹인 대목은 아무래도 지나쳤고, 더욱이 결혼 이력으로 두 유력 재벌 가문까지 등장시켜 부정적 이미지를 느끼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공인의 범위를 어떻게 정리하면 좋겠습니까. 명문대 교수라는 신분을 감안한다면 심 씨와 무관하게 지 씨도 이미 공인의 범주에 들어 있다고 볼 수는 없을까요.

▽김 위원장=‘상시적 공인’과 ‘잠재적 공인’으로 나눠 보면 어떨까요. 영향력이 큰 정치인, 고위 공직자, 재벌, 사회단체 리더, 인기 연예인은 상시적 공인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또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특정 사안과 접목돼 이슈로 떠오르면서 공인의 영역에 들어가는 잠재적 공인이 있겠고요. 일반 시민은 공인이 아니지만 이라크전쟁에서 아들을 잃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크로퍼드 목장에서 반전 시위를 벌여 유명해진 신디 시핸 씨는 공인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유 위원=일거수일투족이 일반의 상시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즉 공공의 관심 대상이 되는 사람이 공인입니다. 갓 데뷔한 연예인은 공인으로 보기 힘들겠지만 자주 보도되고 유명해지면 공인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봐야지요. 교수도 언론 노출의 정도나 사회 문화적 영향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지 교수는 인기 배우와의 결혼을 계기로 공인 그룹에 진입한 잠재적 공인으로 봐야겠지요.

▽최 위원=화제의 인물로 일반의 관심 대상이 되는 사람을 공인으로 간주한다면, 중대한 범죄자라든지 성형 중독으로 크고 둥근 얼굴을 가져 화제가 됐던 ‘선풍기 아줌마’ 역시 공인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봐야 하나요? 가령 대통령이 재혼한다면 결혼 상대자가 아무리 숨기려고 발버둥쳐도 보도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가십 수준에 불과한 연예인 결혼 상대자의 이혼 전력을 이와 동일하게 다룰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이 밖에 사생활에 관한 내용을 보도할 때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할까요.

▽유 위원=‘심은하 예비신랑 지상욱 씨, 재벌가 사위였다’는 표제에다 인기 여배우가 선택한 결혼 상대자는 가문 좋고 돈도 많으며 ‘몸짱’이기까지 하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모습은 ‘옐로 저널리즘’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습니다. 호기심 충족을 위한 흥미 위주의 선정적 보도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언론도 품격이 높아진다고 봅니다.

▽이 위원=연예인을 다루는 기사에도 분명히 지켜야 할 금도는 있습니다. 상식과 교양이라는 실익도 없이 말초적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자극적으로 다뤄 부정적 인상을 부풀려서는 안 되지요. 숨기고 싶어 하는 내용을 보도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보도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준수하려는 노력이 요구됩니다.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참석자 명단

김일수 위원장 (金日秀·고려대 법대 교수)

유의선 위원 (柳義善·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이지은 위원 (李枝殷·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최현희 위원 (崔賢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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