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없어요]<上>누가 이들을 버렸나

  • 입력 2005년 10월 25일 03시 16분


두 살 터울의 자매인 수민(가명·9) 수진(가명·7)이는 석 달 전 서울 관악구의 한 보육시설에 함께 맡겨졌다.

엄마는 집을 나가 2년째 소식이 없다. 공사판 막일을 하는 아빠는 술에 취해 욕을 퍼붓고 아이들을 때리는 일이 잦았다. 보다 못한 동네 주민들의 신고로 수민이 자매는 복지시설에 오게 됐다.

누가 동생을 때릴까봐 항상 동생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수민이는 “아빠가 무서워 집에 가기는 싫지만 엄마가 보고 싶다”면서 울먹였다.

▽빈곤, 가족 해체, 그리고 버려지는 아이들=최근 몇 년 새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는 사회 양극화에 따른 빈곤과 실직, ‘가족 해체’로 버려지는 아이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진아(가명·10·여)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회사원이던 아빠는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됐다. 이후 비디오가게 등 여러 가지 조그만 사업을 했으나 줄줄이 실패했다. 빚 독촉에 시달리다 자주 부부싸움을 벌였고 결국 이혼했다. 진아는 일단 3개월가량 임시로 맡아 주는 서울 강남구 수서동의 서울시립 아동복지센터에 있지만 다음 달에는 보육시설 어딘가로 보내질 예정이다.

아동복지센터 인준경 보호팀장은 “일단 아이들이 보육원에 들어가면 이들을 다시 찾아가는 부모는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아이들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빗나가 가출하거나 청소년 보호시설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까지 각종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진 아이는 4706명. 이 가운데 부모의 실직과 이에 따른 빈곤, 부모 학대 등의 이유로 맡겨진 아이가 전체의 55%인 2608명이다. 또 미혼모가 아이를 낳고도 감당하지 못해 맡긴 경우가 1388명으로 29%다. 나머지는 아이들의 비행, 가출, 부랑 때문에 또는 길이나 집을 잃어 복지시설에 수용됐다.

신용회복위원회가 올해 7월 전국 신용불량자 14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3.8%가 신용불량자가 된 이후 “가족 불화, 이혼, 별거 등을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경제 문제가 가족 해체로 이어지고 죄 없는 아이들에게까지 불똥이 튀는 셈이다.

▽중증 장애 아이는 더 서러워=서울 강남구 세곡동 서울시립 아동병원. 정신박약에 신체장애까지 겹친 복합 중증 장애인인 경수(가명·13)는 이곳에 5년째 있다. 꼼짝을 못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지낸다. 재활 치료는 꿈도 못 꾸고 사망할 때까지 병원에서 이대로 지내야 한다. 간호사와 보모가 대소변을 받아 준다.

그래도 경수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인구 1000만 명인 서울시에 갈 곳 없는 중증 장애인을 맡아 주는 공공시설이라고는 220명 남짓을 수용할 수 있는 시립아동병원 한 곳밖에 없다. 항상 입원 대기자들이 줄을 서 있지만 누군가 나가 빈자리가 생겨야 들어올 수 있다.

김은중 원무팀장은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중증 장애아를 평생 돌보기 어렵다”면서 “이곳에 입원하지 못하는 중증 장애아들은 미인가 복지시설에 수용되거나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집안에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가정과 비슷한 곳으로 가야=버려진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집단 보육시설보다는 가정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게 좋다.

선진국에서는 입양이나 친인척 또는 이웃 주민이 아이를 맡는 가정위탁보호, 서너 가정이 한 아이를 함께 돌보는 자활꿈터(그룹 홈) 제도 등이 비교적 발달해 있다.

중앙대 김성천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혈연의식 때문에 남의 아이를 돌보는 제도가 정착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몇 십 년 전에는 선진국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예산을 지원하고, 사회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결과 집단 보육시설의 역할 비중이 많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홀로 남은 아이::

부모나 보호자로부터 버려진 아동인 ‘기아(棄兒)’와 길을 잃어 부모로부터 이탈된 ‘미아(迷兒)’, 개인이나 환경적인 이유로 가출해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를 총칭.

▼영화 ‘집으로’ 같은 낭만은 없어▼

2002년 개봉돼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던 영화 ‘집으로…’는 도시에 사는 엄마가 생활고 때문에 시골 친정에 어린 아들을 맡기면서 할머니와 손자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과 교감을 차분한 톤으로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해피 엔딩’이지만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최선을 다해도 엄마나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주변의 정서적인 지지와 배려 부족으로 아이들은 자신감을 잃고 소극적으로 되거나 방황하기 쉽다.

이혼, 빈곤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고 있는 이른바 ‘조손(祖孫)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집계에 따르면 조손 가정은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2001년 810가구에서 지난해 3450가구로 4배 이상으로 늘었다.

경남 합천군 대양면 대양초등학교의 경우 전교생 33명 가운데 조손 가정 자녀가 전체의 24%인 8명이다. 엄마나 아빠 한 부모와 살고 있는 자녀도 4명이다.

박봉화(朴琫和) 교감은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도 조부모가 일을 하러 나가 홀로 지내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오후 5시까지 학교에서 특기 적성 및 보충교육을 실시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기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떨어질 때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함께 ‘나는 중요하지 않다’는 자괴감을 갖기 쉽다”며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거나 범죄에 연루된 청소년들의 상당수는 부모와 떨어져 지냈거나 버림받았던 경험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요즘 아이들의 사고방식이나 연령에 따른 발달 단계를 이해하지 못해 대화가 단절되는 경우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노충래(盧忠來)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역 내 네트워크를 구축해 공부나 생활을 도와주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상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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