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난과 이혼 등 가정이 해체되면서 홀로 남은 아이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감은 사라지고 ‘자식=짐’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 역시 홀로 된 아이들을 제대로 수용해 건전한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 내야 하지만 예산 및 인력 부족과 인식 결여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부실하다.
▽‘제도가 버린 아이들’=1년 전 이혼한 김은선(가명·35·여) 씨는 며칠 전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전 남편이 함께 살고 있던 아들 주훈(가명·5)이를 보육원에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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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아이를 데리고 왔지만 주훈이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하늘이 내려앉는 기분입니다. 부모 이혼에 보육원까지 두 번이나 큰 상처를 줬으니…. 아이를 볼 면목이 없네요.”
올해 초부터 9월까지 서울시아동복지센터에 들어온 아이들을 원인별로 보면 이혼, 부모 가출 등 가정 해체로 홀로 된 아동이 전체 287명 중 59%(169명)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상당수 부모가 아동복지센터에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친자식임을 확인한 뒤에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싱글 맘(대디)’이 이혼한 남편(아내)의 동의를 받지 않고서도 아무 때나 자녀를 보육시설로 보낼 수 있도록 돼 있는 아동복지법상의 현행 규정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황은숙(黃恩淑) 한국한부모가정연구소 소장은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이혼한 부부가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낼 경우 다른 한쪽의 사전 동의를 받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홀로 남은 아이 중 가정위탁은 극소수=기철(가명·6)이는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3년째 다른 가정에 위탁돼 생활하면서 여느 아이처럼 밝게 자라고 있다. 비록 피를 나눈 부모는 아니지만 기철이는 위탁 부모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잘 따른다.
홀로 남은 아이가 다른 가정에 위탁되면 정서적으로 안정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지만 국내에서 기철이 같은 사례는 선택받은 소수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보호가 필요한 아동 9393명 중 친척이나 다른 가정에 위탁된 경우는 2212명뿐이었다.
한국복지재단 강원도 가정위탁지원센터의 한태화(韓兌和) 사회복지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모들은 보통 1∼5년 계약으로 다른 가정에 아이를 위탁하는데, 이 중 위탁 뒤 아예 연락을 끊어 버리는 부모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홀로 남은 아이를 위탁하는 가정에 대한 정부 지원도 미미하다. 아이 양육비 명목으로 매달 지급되는 7만 원이 전부다.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 시급=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아동이 버려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홀로 남은 아동은 국가에서 책임진다. 보육시설은 10명 내외의 소규모로 운영되고 다른 가정에 위탁하거나 입양시키는 게 일반화돼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대부분이 보육원이나 민간보육시설에 보내진다.
이정희(李正喜) 서울시아동복지센터 소장은 “국가가 직접 나서서 소규모 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부모를 지원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소장은 “보육시설이 들어서려고 하면 그 지역 주민들이 ‘내 집 주변에는 안 된다’며 반발하는 ‘님비(NIMBY)’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숙명여대 이재연(李在然·아동복지학) 교수는 “최근 사회 전반적으로 자녀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된 부모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며 “정부나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상담사 제도를 운영하고 빈곤층 가정을 방문해 자녀 양육을 도와 주거나 아이를 잠시 맡아 주는 공공기관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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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이진구 기자 leej@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보육시설 생활은 아이들에 큰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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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보육원(고아원) 생활은 큰 상처로 남습니다. 힘들어도 가족이 함께 살아야죠.”
서울 강남구 수서동 서울시아동복지센터 인준경(印準卿·51·사진) 보호팀장은 25일 홀로 남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77년 서울시 공무원이 된 후 28년째 아동보호 업무만 해 온 주인공이다.
아동복지센터는 보육시설로 가기 전에 홀로 남은 아동들이 잠시 머무는 곳. 18세 미만의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최대 3개월까지 보살핀다. 아동학대 신고(국번 없이 1391)를 24시간 접수하고 있으며 아동 보호 및 부모 교육도 맡고 있다.
복지센터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아이는 엄마 아빠를 찾지 않고 울지도 않는다. 오히려 낯선 복지센터 생활에 천연덕스럽게 적응을 잘한다. 부모의 따스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매주 30∼50명의 홀로 된 아동이 복지센터에 들어옵니다. 대부분이 빈곤층 아이이고 이 중 절반 이상이 부모에게서 학대를 받은 경우죠.”
인 팀장에 따르면 홀로 남은 아이의 유형은 시대에 따라 변했다.
6·25전쟁 직후에는 전쟁고아, 1960, 70년대는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가출 아동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혼 등 가정 해체로 세상에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과거에는 부모와 떨어진 자녀가 있으면 친인척이 맡는 게 당연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쉽게 가정을 이루고 쉽게 헤어지면서 아이를 서로 맡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친척마저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픕니다.”
인 팀장은 최근 홀로 남은 아이들이 ‘대물림’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버려진 아이는 결혼해서 자식에게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부모가 어려움을 이겨내고 복지센터에서 자식을 데려갈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인 팀장. 그는 “정년이 될 때까지 소외된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부모 역할을 해 주는 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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