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법률 자문역에 치중했던 대형 로펌들은 몇 년 전부터 중소 로펌이나 개인 변호사의 영역으로 분류됐던 일반 형사 민사 등 송무(訟務) 분야로까지 업무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이에 따라 법률 서비스가 더욱 합리적,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는 반응과 함께 로펌을 이용하기 어려운 서민의 법률 서비스는 상대적으로 더 소홀하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 사건 수임 집중=법조계에서는 “대형 로펌들이 송무 비중을 크게 늘리면서 어지간한 사건들은 이들 대형 로펌에 집중된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대형 로펌들의 주요 사건 점유 상황을 보면 이런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장’은 최근 몇 년간 대기업을 상대로 이뤄진 검찰 수사에서 가장 많은 사건 수임 실적을 기록했다. 2003년 초 SK 비자금 사건에서 최태원(崔泰源) 회장 등을 변호했고 같은 해 진행된 대북송금 사건 수사에서도 현대그룹의 변호를 맡았다. 2003∼2004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는 LG그룹, 현대자동차그룹, 한화그룹의 변호를 맡았다.
‘김&장’은 올해 들어서도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분식회계 사건과 두산그룹 박용성(朴容晟) 회장 일가 비자금 사건을 맡았다.
‘세종’도 대선자금 수사에서 삼성그룹과 롯데그룹 등을 맡았다. 지난해 시작돼 올해 초까지 이어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한화그룹 대한생명 인수 비리 의혹 사건 수사는 ‘충정’이 맡았다.
소송가액이 수십억 원이 되는 대형 민사사건과 헌법재판 사건도 대형 로펌에 쏠리고 있다. ‘태평양’과 ‘화우’는 지난해 수도 이전 위헌 헌법소원 사건을 맡았다.
▽로펌의 변화=대형 로펌들은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기업 인수합병(M&A) 등으로 특수(特需)를 누렸고 소속 변호사 수도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기업의 정리 사건(법정관리 및 화의)과 M&A 사건이 대부분 마무리되면서 ‘특수’도 막을 내렸고, 로펌들은 송무 쪽으로 본격적으로 눈을 돌렸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 등 잇따른 대형 형사사건도 로펌이 송무 비중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로펌의 한 변호사는 “예전에는 로펌에서 기업 자문역 업무가 월등히 많았지만 지금은 ‘김&장’을 제외하고는 자문역과 송무의 비율이 5 대 5 또는 6 대 4 정도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대형화는 시대의 흐름”=로펌 측은 자문과 송무를 아우르는 법률 서비스의 종합화는 시대의 흐름이며 소비자의 요구라고 설명한다.
‘세종’의 박교선(朴敎善) 변호사는 “국내 법률 시장도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며 “법률 시장 개방을 앞두고 다양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로펌은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로펌들은 해외의 로펌과 비교할 때 규모나 매출액 면에서 ‘구멍가게’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은 변호사가 225명이고, 2위인 ‘광장’은 120명이지만 미국의 ‘베이커&매킨지’는 변호사가 3000명이 넘는다.
‘바른’의 한 변호사는 “개방에 따른 종속화를 피하기 위해서는 국내 로펌도 더욱 공격적으로 대형화 전문화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대형 로펌이 ‘전관’이라는 무기로 너무 손쉽게 국내시장을 잠식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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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로펌이 최근 맡은 주요 사건 | |
김&장 | - ‘형제의 난’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 측 변호인 - ‘SK 분식회계 사건’ 관련 최태원 SK그룹 회장 측 변호인 |
광장 | - ‘현대엘리베이터와 KCC의 경영권 분쟁’ 관련 KCC 측 대리인 -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 관련 이건희 회장 및 삼성전자 측 대리인 |
태평양 | - ‘삼성그룹 상대 삼성차 채권회수 소송’ 관련 채권단 측 대리인 - ‘소리바다 저작권 침해’ 관련 소리바다 측 대리인 |
세종 | - ‘흡연 피해자 담배 유해소송’ KT&G 측 대리인 - ‘김포매립지 매각대금’ 서울은행-외환은행 소송에서 외환은행 측 대리인 |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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