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로펌들은 이를 토대로 기존의 주력 업무이던 기업 자문역 외에 기업 총수가 연루된 사건 등 대형 사건을 집중 수임하면서 법률시장 점유율을 크게 높이고 있다.
본보가 대한변호사협회와 각 로펌 홈페이지 등의 자료를 토대로 조사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7월 1일 현재 ‘김&장’과 ‘광장’ ‘태평양’ ‘세종’ 등 국내 10대 대형 로펌(변호사 수 기준)의 변호사는 모두 89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법원과 검찰 출신의 전관 변호사는 240명(27%)이다.
전관 변호사 240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7명이 2000년 이후 로펌에 영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로펌 설립 이후 1999년까지 10∼20년간 영입된 전관 변호사보다 이 기간에 영입된 전관 변호사가 더 많은 것.
이는 대형 로펌들이 주로 법원 검찰 출신의 전관 변호사들을 영입해 대형화를 추구해 온 결과로 보인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은 지난 5년간 39명의 전관 변호사를 영입했다. 이는 1972년 설립 후 1999년까지 28년간 영입한 전관 변호사 31명보다 많은 수다.
‘광장’과 ‘태평양’도 2000년 1월 이후 영입한 전관 변호사가 각각 17명, 15명으로 나타나 그 이전에 영입한 전관 변호사보다 많았다.
로펌이 대형화되면서 대형 사건도 이들 로펌에 집중되고 있다.
10월 초 삼성자동차 채권단이 삼성그룹을 상대로 제기한 4조7000억 원 규모의 채권 회수 소송에서 채권단은 ‘태평양’과 ‘화우’를 대리인으로 선정했다. 이 소송은 국내 최대 규모의 소송이다.
‘광장’은 ‘현대엘리베이터와 KCC의 경영권 분쟁’ 관련 사건에서 KCC 측을 대리했으며 ‘세종’은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흡연 피해자 담배 유해소송’에서 피고 KT&G를 대리하고 있다.
2003, 2004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 수사 대상이 된 현대자동차와 LG 한화 롯데 SK 등 대기업들도 모두 10대 대형 로펌에 사건을 맡겼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개인변호사들은 위기감 호소▼
로펌이 대형화하면서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 일반인들도 대형 로펌을 선호하는 추세다.
이 같은 ‘로펌 집중화’를 둘러싸고 논란도 많다.
▽개인 변호사들은 한숨=대형화 전문화된 로펌들이 ‘전관’ 프리미엄까지 활용해 송무 분야의 ‘소액’ 사건까지 맡게 되면서 소형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과 개인 변호사들은 한숨을 내쉰다.
이들은 한결같이 대형 로펌과의 싸움을 ‘대형 할인점’과 ‘재래시장’의 싸움에 비유했다.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후 곧바로 개업한 박모(32·여) 변호사는 “전에는 개인 변호사들이 로펌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있었다”며 “그러나 요즘은 대형 로펌들이 앞 다퉈 수임료를 낮추고 있어 그조차도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로펌들이 선임비용을 과거에 비해 50%가량 낮춰 ‘가격 파괴’ 공세를 펴고 있다는 것.
박 변호사는 “올해 들어 주변 변호사 사무실 중 빈 곳이 급격히 늘고 있다”며 “수임료가 비슷해지면서 개인 변호사는 의뢰인을 위해 인간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만난 김모(45) 변호사는 “로펌들이 예전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았던 2000만, 3000만 원짜리 소액 사건까지 맡고 있다”고 말했다.
이모(36·여) 변호사는 “로펌이 수임 가격을 낮추는 건 법률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로펌이 만능은 아니다”=구속 여부가 걸린 긴급한 형사 사건이나 전 재산이 오가는 민사 사건의 당사자들로서는 쟁쟁한 변호사들이 즐비한 로펌에 마음이 끌리기 마련이다
로펌의 강점은 절박한 상황의 의뢰인들에게 다양한 경력을 가진 전관들의 입체적인 인맥을 통해 ‘종합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대형 종합병원에서 ‘종합 검진과 진료, 치료까지’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로펌 만능주의에도 문제는 있다. 올해 2월 1심에서 승소한 한 중견기업의 사례가 이러한 문제점을 보여 준다.
이 회사는 2003년 노동조합으로부터 200억 원의 소송을 당했다. 회사의 법무 실무자는 “잘 아는 개인 변호사에게 맡기자”고 했으나 간부들은 “큰 로펌에 맡겼다가 지면 ‘그곳에 맡겼는데도 졌다’고 할 말이 있지만 개인 변호사에게 맡겼다가 지면 ‘그러니까 졌지’라며 질책을 받을 수 있다”며 대형 로펌에 맡기자고 했다.
로펌 변호사들은 1심 판결 직전 회사 측에 “아무래도 패소할 것 같으니 노조 측과 합의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노조 측이 전혀 양보하지 않아 협상은 결렬됐다.
그러나 결과는 회사 쪽 승소. 대형 로펌의 ‘예측’은 빗나간 셈이다.
판사 출신의 한 개인 변호사는 “로펌은 능력과 영향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지만 만능은 아니다”며 “의뢰인들은 무조건 로펌을 찾기보다 법률 상담 등을 거친 뒤 자신의 처지에 맞는 변호사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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