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본질이 ‘YS 정치자금이 안기부(옛 국가정보원) 계좌를 통해 신한국당 선거자금으로 지출된 사건’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단=사건의 쟁점은 안기부 비밀계좌에서 보관되다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총선을 앞두고 인출돼 민자당과 신한국당의 선거자금으로 사용된 1197억 원의 출처였다.
검찰은 이 돈이 전부 안기부 예산이며, 강삼재(姜三載) 전 의원 등이 안기부 예산을 횡령했다고 판단해 강 전 의원 등을 국고손실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검찰 주장을 거의 그대로 인정하면서 강 전 의원 등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의 흐름을 바꿔놓은 것은 사건 당사자인 강 전 의원의 ‘폭탄선언’. 강 전 의원은 지난해 2월 항소심 재판 도중 “김기섭(金己燮) 전 안기부 운영차장이 YS의 정치자금을 안기부 계좌에 입금해 관리하다가 빼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차장이 돈을 빼내 YS에게 줬고, YS가 그 돈을 다시 자신에게 선거자금으로 지원했다는 것.
2심 재판부는 강 전 의원의 주장대로 문제의 돈은 안기부 예산이 아니라 YS의 정치자금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대법원도 이 같은 항소심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
▽YS 수사할까=대법원이 자금의 출처가 사실상 YS라고 인정함에 따라 검찰이 YS를 수사할지 주목된다.
만약 YS가 1992년 대선 때 기업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거둬 몇 년 뒤 총선자금으로 쓴 것이라면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는 공소시효(3년)가 지났다.
대통령 당선 이후 기업체로부터 대가성이 있는 돈을 받았다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 공소시효가 10년이고, 대통령 재임 5년 동안엔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2008년 10월까지는 기소가 가능하다.
하지만 입증이 쉽지 않다. 10년이나 지난 일인 데다 YS의 ‘입’ 외엔 증거를 찾을 방법이 막막하다. 따라서 사건의 실체는 미궁에 남겨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 법무부는 한나라당과 강 전 의원, 김 전 차장을 상대로 국가재산(안기부 예산) 940억 원을 물어내라며 소송을 냈는데, 대법원 판결로 근거가 없어졌다. 법무부는 이 소송을 취하할지 검토 중이다.
강 전 의원은 무죄 판결에 대해 “조금 여유를 가진 뒤 김 전 대통령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겠다”고 말하는 등 YS의 반응을 의식하는 모습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재판 결과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 安風사건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과 신한국당이 1995년 6·27지방선거와 1996년 15대 총선에서 1000억 원이 넘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예산을 빼돌려 선거자금으로 사용한 사건.
2000년 경부고속철 차량선정 로비의혹에 대한 수사 도중 정체불명의 뭉칫돈이 한나라당의 차명계좌에서 발견되고, 이 돈이 안기부 계좌에서 나온 사실이 확인되면서 불거졌다.
동아일보가 그해 10월 4일자에 “안기부 계좌에서 나온 수백억 원이 1996년 15대 총선 직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에 선거자금으로 제공됐다”고 특종 보도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검찰은 2001년 1월 안기부 예산 1197억 원을 불법 전용한 혐의(국고손실)로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과 강삼재 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기소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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