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석방? 검찰-시민위원 열띤 토론

  • 입력 2005년 10월 31일 03시 04분


27일 오후 경남 창원시 사파동 창원지검 4층 구속심사회의실에서 구속심사위원들이 구속 피의자의 석방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 창원=이태훈  기자
27일 오후 경남 창원시 사파동 창원지검 4층 구속심사회의실에서 구속심사위원들이 구속 피의자의 석방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 창원=이태훈 기자
《‘구속’은 가장 중요한 기본권에 속하는 신체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다. 검찰은 형사소송법과 내부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구속 문제를 결정해 왔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국민으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창원지방검찰청(지검장 이훈규·李勳圭)은 구속 피의자의 석방(구속 취소)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 시민대표의 의견을 반영하는 ‘구속심사위원회’제도를 처음으로 시행하고 있다. 검찰권 행사에 대한 시민의 민주 참여와 ‘비대한 검찰권 양보’의 첫 시도로 평가받고 있는 창원지검의 사례를 현지 취재를 통해 조명함으로써 검찰 개혁의 방향을 살펴본다.》

27일 오후 2시 경남 창원시 사파동 창원지검 4층 ‘구속심사회의실’.

구속심사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이순복(李淳福·경남신문 대표) 위원장과 위원 4명이 이달 13일 출범한 구속심사위 3차 회의에 참석해 구속된 피의자를 석방할 것인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이날 상정된 안건은 3건. 승용차로 70대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대학 휴학생 L(25) 씨와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된 나이트클럽 종업원 H(30) 씨, 절도를 일삼던 중학생 P(15) 군 등이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이미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속된 상태지만 증거가 모두 확보되는(증거인멸 우려가 없어지는) 등 상황 변화가 생겨 구속 취소를 검토할 필요가 제기된 사안들이다.

첫 심사 대상은 대학 휴학생 L 씨. 그는 15일 오전 6시 35분경 승용차를 몰다 중앙선을 넘어 반대 차로의 갓길을 걷고 있던 노인을 치어 숨지게 했다. 주임검사는 L 씨 측이 피해자와 손해배상에 대해 합의를 시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구속 유지가 유력해 보였다.

이 위원장이 검사에게 물었다. “L 씨 측은 왜 합의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까.”

“L 씨 가족은 ‘배상할 능력이 전혀 없어 미안한 마음에 연락을 못했다’고 하고, 피해자 가족은 ‘반성하지 않는다’며 가해자 측을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검사)

이 위원장이 의견을 말했다. “주거와 신분이 확실한 데다 피해 배상은 1심 재판에서도 가능한 만큼 구속을 취소한 뒤 기소하는 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김창룡(金昌龍·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 위원도 동의했다. “사망 사고이긴 하지만 고의가 없고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휴학한 상태에서 일을 하던 중 사고를 낸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나머지 위원 3명도 구속 취소에 동의했다. L 씨는 위원회의 구속 취소 권고를 수용한 검사의 석방지휘에 따라 28일 구치소에서 풀려났다. 검찰의 관행대로라면 구속 기소될 가능성이 높은 사건이었으나 시민들의 판단은 달랐다.

2번째 심사 대상은 나이트클럽 종업원 H 씨. 그는 14일 오전 10시 45분경 혈중알코올농도 0.175% 상태로 운전을 하다 적발됐다. 음주운전으로 기소된 전력이 3회 있었다.

주임검사가 적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피의자는 단속 경찰관의 멱살을 잡는 등 격렬히 저항했습니다.”

김 위원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구속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조철현(曺喆鉉·정우개발 과장) 위원은 선처 의견을 냈다. “나이트클럽 종업원으로 손님이 권하는 술을 거절하기는 어렵습니다.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신 사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사안은 나머지 위원 3명도 의견이 엇갈려 ‘의견불일치’로 종결됐다.

3번째 심사 대상인 P 군의 경우 서정희(徐貞姬·창원 가정폭력상담소장) 위원 등의 의견에 따라 특별 관리를 약속하는 담임교사의 각서를 받고, P 군을 위탁할 사회보호시설을 확보할 경우에 한해 구속을 취소한다는 ‘조건부 구속 취소’로 의결됐다.

그러나 P 군의 구속만기일인 28일까지 구속 취소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P 군은 구속 상태에서 법원 소년부의 재판을 받게 됐다.

창원지검 구속심사위 의결과 검찰 결정
회의(일시)상정 안건 및 회의 결과 구속심사위원회의결 내용검찰 결정
1차(10월13일) 6건 중 5건 의결(의견불일치 1건)구속 취소 3건구속 취소 3건
구속 유지 2건구속 유지 2건
2차(10월20일)5건 중 5건 의결구속 취소 2건구속 취소 2건
구속 유지 3건구속 유지 3건
3차(10월27일)3건 중 2건 의결(의견불일치 1건)구속 취소 2건(조건부 구속 취소 1건 포함)구속 취소 1건구속 유지 1건(조건 미충족으로 구속 유지)
자료: 창원지검

창원=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어떤 의미가 있나▼

창원지검의 구속심사위원회 제도는 검찰이 시민에게 구속 취소 결정 과정을 공개하고 권한까지 일부 양보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검찰개혁 모델로 평가받을 만하다.

창원지검의 구속심사위는 올해 6월 경남 마산시에서 발생한 30대 주부의 남편 살해 사건을 계기로 구성됐다.

창원지검은 고심 끝에 이 주부의 구속을 취소했다. 10년간 남편에게서 폭행을 당하면서 심한 공포에 시달린 점과 남편 살해 직후 자수한 점, 어린 두 딸(6, 8세)을 돌볼 사람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

창원지검 관계자는 “당시 시민의 상식을 검찰 결정에 참고하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공감대가 검사들 사이에서 형성됐다”고 말했다.

구속심사위는 검찰이 그동안 가장 공개하기를 꺼렸던 ‘기소 전 구속 취소’ 과정을 시민에게 공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검찰은 사정 변경이 있는 경우에 한해 구속 취소 결정을 해왔다. 그러나 검사의 판단과 재량에 의해 결정이 내려지는 데다 결정 과정이 전혀 공개되지 않아 일반인 사이에서는 ‘돈’과 ‘배경’ ‘변호사의 로비’ 등이 구속 취소에 영향을 미친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식과 오해가 팽배해 있었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이 제도는 검찰 결정 과정에 시민 참여를 도입하는 의미가 있다”며 “시민의 눈과 상식에 맞는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검찰권 행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섣부른 권한 양보가 무책임한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내부의 시각과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창원=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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