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교사들에게서 전도(顚倒)된 세계관, 자학적(自虐的) 민족관, 현실에 대한 왜곡된 시각, 가진 자에 대한 증오를 주입받은 우리의 다음 세대가 어찌 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수천 년 가난을 벗고 국민 대다수가 이제 겨우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게 됐는데, 다음 세대를 이런 교육폭력에 인질 잡히게 됐으니 정말 우리는 축복받지 못한 민족인가. 그런데 이런 자료를 만들고 활용하는 교사는 어떤 공부를 해서 교사 자격을 얻은 것일까.
전교조 교사들뿐 아니라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오늘날의 서양은 천혜의 조건 덕분에 근대 국가로 발전했고 다른 나라를 약탈해서 부강해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서양이라면 무조건 비난하고 증오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서양의 간섭과 착취만 없으면 우리끼리 잘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잘못된 것은 모두 서양의 영향 또는 음모로 빚어진 일이고, 비서양적인 전통은 존중과 보존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농산물에 기생충 알이 들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거리에 침 뱉는 사람이 평균 시민이었으며, 보행 신호를 보고 길을 건너도 지나가던 버스 운전사에게서 ‘뒈지려고 환장했느냐’는 욕설을 들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관공서에 서류 하나 떼러 가면 이유 없이 창구 직원에게 수모를 당해야 했고, 국산품은 불량품과 동의어였던 우리나라의 50년 전, 40년 전, 30년 전의 모습을 기억하면서도 조국 근대화는 잘못된 것이고 우리는 서양 때문에 피해를 보기만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기억상실증 환자일까, 아니면 그런 기만술(欺瞞術)로 힘없는 민중을 자극해서 그들을 지지 세력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적인 인간일까. 우리나라가 그들이 흠모하는 북한처럼 다시 가난해지면 생활수준의 저하가 문제가 아니라, 민중이 다시 무력해지고 관권의 횡포와 끔찍한 부정부패에 저항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진정 모르는 것일까.
전교조는 그들의 위법적, 반교육적인 ‘반(反)APEC 정상회의 교육’의 목표가 학생들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길러 주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한다고 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은 서양의 개인주의가 그들이 주장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같이 누구나 자기중심적 이기적으로 살아도 좋다는 몰염치한 사상이 아니라, 위계질서의 억압에서 개인을 해방시켜 민중 개개인의 존엄성과 인권을 보호하고, 개인의 창의성을 살려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이를 통해 사회도 발전과 번영을 이루려는 위대한 인도주의적 사상이라는 점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영국에서 ‘자유방임주의 시장경제 원칙’이 수립된 것은 전교조 교재의 주장처럼 약육강식(弱肉强食)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16∼18세기에 걸쳐 횡행했던 관치경제, 특히 전매특허권의 남용으로 국민이 질 낮은 제품을 고가에 살 수밖에 없었던 극도의 불의에 대항해 힘없는 소비 대중을 보호하기 위한 인도주의의 승리였음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서구 국가들이 온갖 사회적 시련에도 불구하고 국기(國基)가 튼튼한 것은 민중이 오래고 끈질긴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로 말할 것 같으면 서양의 특이한 속성이 아니다. 중국과 일본의 오랜 특기였고, 오늘날 한국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베트남이 캄보디아에서 행하는, 즉 국가 간 힘의 불균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발생하는 행태다. 적대감으로 싸우기보다 슬기롭게 막고 대처하는 것이 실리를 꾀하는 방법이다.
서양을 강력하게 만든 사상과 이념을 제대로 알아야 서양과 대결할 수 있다. 어린 마음에 세상에 대한 적의(敵意)를 심고, 인간을 불신하게 만들어 그들의 의식과 삶을 병들게 하는 어른의 죄는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생명 파괴, 민족 반역의 죄다.
서지문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영문학 jimoon@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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