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은 멈췄지만 삶의 터전을 잃은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질병과 굶주림, 추위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부상자 중 제대로 치료받고 있는 환자는 일부에 불과하고 폐렴 환자와 파상풍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지진보다 더 끔찍한 재앙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신음하는 파키스탄에서 인술을 펼치기 위해 대한의사협회 긴급의료지원단은 세 차례에 걸쳐 60여 명의 의료진을 참사 현장에 파견했다. 의협 지원단은 하루 평균 300명씩 총 7500여 명의 환자를 돌보며 의료봉사활동을 벌였다. 특히 고정 진료소라는 확실한 근거지를 둠으로써 처치 후 추후관리를 원활히 할 수 있었다.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피해 규모가 워낙 심각한 탓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많은 단체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개별적이고 산발적인 활동만 하는 등 지원활동이 단발에 그치다 보니 환자를 지속적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단체의 경우 의료봉사의 참의미를 떠난 ‘보여 주기식’ 활동으로 참사를 겪은 주민들에게 도리어 상처를 주기도 했다.
현지에서 의료지원활동을 하며 절실히 느낀 점은 긴급 재난 시 소규모로 뿔뿔이 지원활동을 펼치기보다는 시스템을 확실히 갖추고 창구를 단일화한 상태에서 지원활동을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앞장서 조정자 역할에 나서야 한다. 각 단체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모일 수 있도록 관리하고, 신속히 정보를 확보해 대처하며,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게 보호해야 한다. 지원단 활동을 하면서 정부와 대사관으로부터 이렇다 할 협조가 없었다. 앞으로는 이를 교훈삼아 차후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재난과 재해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예측불허다. 지금이라도 국가 차원의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다른 재난이 발생할 경우 제대로 된 시스템하에서 자랑스럽고 당당한 ‘코리아 단일팀’으로 진료 및 구호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김세곤 대한의사협회 긴급의료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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