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창립 이후 전교조는 10년 만에 합법단체가 됐고 그동안 교단 민주화 등 교육 현장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전교조가 막강한 조직으로 성장하는 동안 ‘전투적’ 운동 방식이 체질화돼 제대로 공(功)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외국에서 온 교육전문가들의 한 국립중학교 시찰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섭외하는 과정에서 전교조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했다.
행사 안내를 맡은 연구원이나 학교장은 “교원평가제 같은 민감한 내용의 인터뷰를 한 것을 (전교조가) 알면 난리난다”며 말 그대로 바들바들 떨었다.
한 교육감은 “국회의원도, 교육위원도 안 무섭다. ‘반대’만 하는 전교조만 없으면 일할 맛이 나겠다”고 하는가 하면, 한 중학교 여교사는 “(전교조를) 탈퇴하고 싶어도 동료 눈치 때문에 못하겠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일선 교육 현장에는 어느새 ‘전교조에 잘못 보이면 다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전교조 공포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막강한 교원노조도 교육 소비자인 학생이나 학부모를 의식하지 않으면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일본의 일교조(日敎組)는 1974년 단 하루 불법 파업을 시도했다가 여론의 지탄을 받으면서 신뢰를 잃어 지금은 교사 가입률이 30% 선으로 쇠락했다. 전미교육협회(NEA)와 미국교원연맹(AFT)도 공허한 교육이념 논쟁에 식상한 학부모들이 학업성취도 향상 같은 현실적 문제를 들고 나와 조직적으로 대응하면서 합리적 노선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번에 전교조가 사실상 ‘백기’를 든 것도 학부모단체와 학교운영위원회까지 비판하고 나선 국민 여론의 압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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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단체에는 정부가 아닌 학생 학부모가 가장 큰 ‘압력단체’이다. 교원단체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헤아려야 한다는 뜻이다.
단식 농성장에서 만난 이수일(李銖日) 전교조 위원장이 “우리에게는 아이들밖에 없다”고 한 말을 믿고 싶다.
이인철 교육생활부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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