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테마 기행]남산골 한옥마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기

  • 입력 2005년 12월 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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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청학동이라 불렸을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서울 중구 남산골 한옥마을. 1일 오후 조선 철종의 사위인 박영효 가옥을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원대연 기자
과거 청학동이라 불렸을 정도로 경치가 아름다운 서울 중구 남산골 한옥마을. 1일 오후 조선 철종의 사위인 박영효 가옥을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원대연 기자
서울 남산 북쪽 기슭(중구 필동)에 자리 잡은 ‘남산골 한옥마을’은 옛날에는 청학이 노닐었다고 해서 ‘청학동’으로도 불린 곳. 경치가 빼어나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과 더불어 한양 5동으로 손꼽혔다.

1990년 남산 제모습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추진된 ‘남산골 한옥마을’은 오랜 세월 동안 훼손된 2만4000여 평의 대지 지형을 복원하고, 서울시내에 보존된 고택들을 이전·복원해 1998년 일반에 공개됐다.

이곳에는 지금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 해풍 부원군 윤택영 재실, 오위장 김춘영 가옥, 도편수 이승업 가옥 등 전통 한옥 5채가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왕실의 품위가 있는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서울 팔대가(八大家) 중 하나로 전해지는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은 조선 철종의 딸인 영해옹주의 남편 박영효(1861∼1939)가 살던 집. 종로구 관훈동에 있던 것을 이전·복원했다. 안채만 남고 모두 없어졌던 것을 한옥마을을 조성하면서 사랑채와 별당채를 복원했다.

부엌과 안방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개성 인근 지역의 형태로 서울의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가옥 구조다.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는 조선 마지막 임금인 순종의 정비인 윤씨가 13세에 동궁의 계비로 책봉되기 전까지 살았던 집. 원래 종로구 옥인동에 있었는데 너무 낡아 옮기지 못하고 건축양식 그대로 복원했다. 집의 평면은 ㄷ자형 몸채 앞쪽에 사랑채를 둬 전체적으로 ㅁ자 형이다.

▽선비의 멋이 살아있는 윤택영 재실=윤택영은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의 아버지. 재실은 일반 살림집이 아니고 묘제(墓祭)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현존하는 한옥 중 가장 독특하게 元(원)자형으로 배치됐으며 집 제일 안쪽 높은 터에 사당이 자리 잡았다. ‘오위장 김춘영 가옥’은 조선 말기 오위장을 지낸 김춘영이 1890년대에 지은 집. 오위(五衛)는 조선 시대 궁궐과 서울을 수비하던 중앙군사조직으로 오위 중 가장 높은 벼슬이 오위장이다. 안방의 뒷벽이 골목길에 직접 접하는 외벽 구성이 특이한데 이는 조선 말기 도시형 서민 주거의 특징이다.

▽도편수가 직접 지은 자택=‘도편수 이승업 가옥’은 흥선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공사에 참여했던 도편수(목수의 우두머리) 이승업이 1860년대 지은 중인 가옥. 목수의 자택답게 장식이 많고 정교한 것이 특징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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