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은 넘었고 또 한 고비가 남았다. 수험생들이 체감하는 논술의 고지는 생각보다 훨씬 높다. 구술 문제들은 정답이 아니라 근거를 요구한다. 그러니 수능과는 다른 새로운 지적 근육이 절실하다.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이 아니라 좋은 질문이다. 이 책은 매사가 궁금한 ‘맹랑한 딸’과 아주 자상한 ‘철학하는 아빠’의 대화록이다. 두 사람은 우리 머릿속에서 펼쳐질 모의 사고실험의 배우들이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생동감 있게 질문하고 꼼꼼히 검토하는 법을 익혀 보자.
사람들은 행위를 할 때마다 시시콜콜 판단 기준을 숙고하지는 않는다. 관습적으로 내려온 상식 덕분이다. 하지만 ‘어째서’ 그러한지를 묻고 나면 답변이 쉽지 않다. “약속은 왜 지켜야 하나?”, “거짓말은 언제나 나쁜가?”, “아홉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이 희생되어도 좋은가?”…. 맹랑한 딸은 생활의 상식이 꼬일 때마다 거침없이 질문한다. 이 질문들은 소크라테스나 칸트, 벤담 같은 철학자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나의 삶에서 시작된 질문이 철학적 탐구의 출발점이다.
딸의 질문은 독서량 많은 아빠를 통해 다양한 사례로 나아간다. 대중스타를 좋아하는 딸은 ‘사랑’의 의미를 알기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나 주인공이 벌레로 변한 ‘변신’의 의미를 검토한다. 또한 친구들 간에 종종 있는 ‘왕따’ 문제와 인터넷에 중독된 청소년의 심리도 살펴본다. 이런 식으로 현실과 소설을 넘나들며 세계를 재조립하는 방법이 각 장에서 펼쳐진다.
시사적 문제도 빠뜨릴 수 없다. 지능지수(IQ)에 대해 궁금해 하다가 ‘우생학’을 알게 되자 미국의 흑인 차별이나 나치의 게르만 우월주의를 비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지국가 이념이나 유전 공학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단절된 지식들이 서로 연결되면 심층을 볼 수 있는 넓은 눈을 가질 수 있다.
철학하는 아빠는 마치 요리사처럼 30여 권의 수준 높은 고전을 먹기 쉽게 내놓는다. ‘시험장에서의 부정행위 문제’를 토론하면서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로 이끄는 식이다. 조금도 쉬지 않고 질문하는 딸 덕분에 대화는 리처드 로티나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이의 굵직한 철학을 두루 거친다. 학생들은 사고의 차원을 높여서 철학적 원리에 나아가는 단계들도 자연스레 익히게 될 것이다.
구술이 낯설다고 암기로 때우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다. 이 책에서처럼 가까운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토론을 해보자. 창의적인 대답은 학생 각자의 내면에서 나오는 법. 우리 수험생들이 사고의 힘으로 지식을 되새김해 보기를 적극 권하고 싶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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