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연수 판사들이 전하는 선진국 사법소식

  • 입력 2005년 12월 5일 03시 00분


《법의 세계에서도 국가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한국인과 한국 기업이 미국 등 외국에서 재판받는 일이 많아지고, 외국의 판례나 법률이 한국에 인용되거나 적용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외국 판결과 법률 정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해외 연수를 떠난 판사들은 자신이 있는 곳의 법률 소식을 수시로 전해 온다. 법원행정처는 이 소식들을 묶어 ‘해외사법소식’을 발간하고 있다. 판사와 법원 직원들로 이뤄진 ‘해외 법률 통신원’들을 통해 ‘세계의 법·사람·세상’ 이야기를 들어본다.》

수원지법 평택지원의 이흥권(李興權) 판사는 10개월 일정의 캐나다 연수를 떠났다가 올여름 귀국하기에 앞서 캐나다 대법원의 주목할 만한 판례를 소개했다.

일명 ‘하버드 마우스(Harvard Mouse)’로 불리는 생쥐의 특허 인정에 관한 것으로 현대 생명공학의 주요 쟁점이 되는 문제다.

하버드 마우스는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 낸 세계 최초의 특허 포유동물이다. 이 생쥐의 몸 안에서 암세포가 쉽게 증식한다는 특성 때문에 발암물질 및 암 치료제 검사에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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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뉴질랜드 등은 이 생쥐에 대해 특허를 인정했지만 2002년 12월 캐나다 대법원은 이 생쥐에 대한 특허를 거부했다.

이유는 한마디로 생쥐 같은 고등생물(higher life form)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미생물 등과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는 것. 생쥐와 같은 포유류까지 특허를 인정하게 되면 결국 언젠가 인간도 특허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이를 제한할 안전장치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이 판사는 “이 판결이 나오고 난 뒤 캐나다는 종교단체, 동물애호단체의 열렬한 지지와 생명공학계, 산업계의 우려가 엇갈려 ‘홍역’을 앓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에서 연수 중인 김용호(金鎔浩·부산지법) 판사는 최근 대법원에 ‘개와 영국법’에 관한 소식을 전해 왔다.

‘개 사랑’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영국인들은 ‘개’의 관리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하다는 것.

영국에서는 사자나 호랑이 등 ‘본디 위험한 동물(naturally dangerous animals)’이 아닌, 개와 같은 애완동물이 사고를 냈을 경우 ‘개 주인’에게 엄격한 책임을 묻는다고 김 판사는 전했다. 특히 개가 어린이를 무는 사고가 심심찮게 발생하자 1975년 ‘개의 관리에 관한 법률(the Guard Dogs Act)’을 제정하고 1991년에는 ‘위험한 개에 관한 법률(the Dangerous Dogs Act)’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결과 공공장소에서 개가 사람을 물어 다치게 할 경우 ‘개 주인’은 민사상 손해배상은 물론 형사처벌까지 받게 됐다는 것. 이 법에 의하면 문제를 일으킨 개들은 법원 명령에 의해 ‘제거’될 수도 있다.

2002년 11월에는 영국 왕족인 앤 공주가 자신이 데리고 산책하던 불테리어 개가 두 아이를 물어 다치게 하는 바람에 500파운드(약 100만 원)의 벌금을 냈다.

4일 오전 전남 신안군 흑산면에서 박모(45) 씨의 아들(7)이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집에서 기르던 시베리안 허스키에게 목을 물려 숨지는 등 최근 ‘개 사고’가 이어지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주 브리즈번의 퀸즐랜드대 로스쿨로 연수를 떠난 신현범(愼炫範·대구지법) 판사는 한국 유학생들의 교통사고 사례 연구를 통해 호주의 손해배상 제도에 대해 알려 왔다. 호주 법은 교통사고 피해자가 어린이나 학생인 경우 중상을 입고 장애인이 되거나 신체적인 이상이 발생하면 거의 모든 부분을 가해자가 책임지도록 하지만 숨진 경우에는 장례비만 지급하도록 한다는 것. 사망자가 가장이 아닌 어린이나 학생인 경우 유가족에 대한 부양 의무가 없기 때문에 유가족에게는 현실적 손해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밖에도 판사들은 법률 선진국의 로스쿨 제도는 물론 배심·참심 재판 관람기나 바람직한 재판 사례 등 최근 한국 사법부가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제도와 관련한 해외의 법률정보도 함께 전해 오고 있다.

연수 중인 판사들이 전해 오는 해외 사법소식은 법원도서관 홈페이지(library.scourt.go.kr)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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