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첫날인 8일 여행객의 불편과 기업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하지만 노사 대화협상은 중단된 채 해고자 복직 문제가 새로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며 노사 양측이 감정 대립 양상까지 보여 난항을 겪고 있다.
▽비행기 못타 발만 동동=이날 오전 김포공항 국내선 여객터미널. 파업사실을 모른 채 인도 출장에서 돌아온 최연종(35) 씨는 “짐도 많고 몸도 피곤한데 집이 있는 포항으로 갈 교통편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저임금에 고생하는 노동자들이 많은 현실에서 고액 연봉의 조종사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다수의 일반시민들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네이버, 다음, 야후 등 인터넷 사이트에는 누리꾼들의 비판이 잇따랐다.
회사원 김동우(42) 씨는 “이달 12일 중요한 업무출장을 앞두고 비행기표를 예매했는데 파업 때문에 차질을 빚을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예고도 없이 국민들을 볼모로 파업을 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협상 전망 어두워=파업 첫날인 8일 회사와 조종사 노조는 공식적인 협상자리를 갖지 못했다. 회사 측의 강경부 노사협력실장은 “이번 파업의 진짜 목적은 임금인상이 아니라 그 동안 노조 측이 비공식적으로 요구해온 해고자 복직”이라며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안”이라고 못 박았다.
회사 측은 노조가 농성장에서 나와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선(先) 파업해제 후(後) 대화’를 주장했다.
노조 측도 쉽게 파업을 풀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인천공항 인근 영종도 인천연수원에는 7일부터 농성 중인 400여 명의 조종사 외에 8일에도 추가로 집결하는 등 동참 조종사들이 700여 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
그러나 조합원 1만여 명의 대한항공 일반직 노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고소득 직종인 조종사들이 항공업계의 특수성과 승객을 볼모로 파업을 감행하려는 것은 어떤 명분과 논리를 내세워도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수 없다”며 “사내 기타 직종의 동료들에게도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나서 노노(勞勞) 간 갈등 비화 조짐을 보였다.
한편 긴급조정권 발동에 대해서는 노동부와 건설교통부의 태도가 다소 엇갈리고 있다.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국민경제 차원에서 노동부 장관에게 긴급조정권 발동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긴급조정권 결정권한을 갖고 있는 노동부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하필 연말 대목에… 반도체 휴대전화 수출 초비상”
“지금은 대체 항공편도 구할 수 없습니다. 해외 바이어들에게는 ‘(물건) 못 나가니 그리 아시오’ 하는 수밖에 없죠.”
대기업 상품을 해외로 위탁 운송하는 한 물류회사의 김모(45) 부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연말 특수(特需) 시기인 데다 대한항공은 수송 물량이 많아 타격이 더 심각하다”고 전했다.
8일부터 시작된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으로 수출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들은 해외 바이어와 급히 연락해 납기일을 조정하거나 다른 운송수단을 찾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파업 첫날 국제선 화물기의 결항률은 77%. 올해 1∼10월 항공화물 수출규모는 707억 달러로 총수출에서 30.3%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대한항공의 점유율은 50.3%에 이른다.
항공 수출 비중이 높은 전자, 정보기술(IT) 업체들은 파업 장기화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반도체나 휴대전화는 전체 물량의 80% 이상이 항공기로 운송되고 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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