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중세의 형벌중에 가장 압권이면서 정말 우리 민족다운 형벌이 바로 "팽형"이다, 이 "팽형"은 일종의 명예형으로 주로 관직을 매매하거나,혹은 축재와 관련해 사리사욕으로 가문이나 사직의 명예를 더럽힌 자들에게 내리는 중벌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이렇게 집행된다.
일단 저자거리에 거다란 솥을 내다 걸고 솥 아래에는 장작을 쌓는다, 그리고 죄수를 데려와서 흰옷을 입히고 그 솥속에 들어가게 한 다음 장작에 불을 때는 시늉을 한다, 그동안 죄인의 자제들은 호곡을 하면서 죄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장례 절차를 준비하게된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죄인은 솥에서 내려지는데 이순간 부터 죄인은 살아 있으되 죽었으며 이름이 있으되 불리워지지 않는다, 호적과 족보에는 사망으로 기록되고, 죄인의 가족은 빈소를 차리고 조문을 받으며 죄인은 집에서건 밖에서건 흰옷을 입고 머리를 산발한 채 목숨이 다 할때 까지 죽은자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인권유린으로도 비쳐지만, 사람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해하지 않고 인격 살인을 택한 것인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명예에 관한 치열한 정신적 가치를 읽게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개 팽형을 언도 받으면 두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 할 수있다,
스스로 자결 하던지, 아니면 팽형을 당하고 인격살인을 당하는 방법인데, 대개는 죽음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명예란 중요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참수 당하는 것 이상으로 이 형벌을 두려워하였고, 참수 당한자는 복권되었으나 팽형을 선택한자는 복권되지 않았다, 즉, 죽음으로 명예를 지킨자는 죄없음이 밝혀지면 원상복구 되지만 비록 죄가 없더라도 목숨으로 명예를 버린자는 구제되지 않는것이다,
우리는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명예에 관해 많은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목적보다 수단이 우선시되면서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을 위해 내가 지켜야 할 것을 버리는 것이 예사가 되었다,
때로는 일간 신문의 정치면에서 신조를 저버린 정치인의 이야기를 보면서,때로는 X- 파일에 등장하는 숱한 노블리스들의 이름과, 주가조작에 연루된 유명 연예인의 이름에서, 또 때로는 원조 교제와 매춘과 같은 자식보기 부끄러운 범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우리들의 자화상들에서,우리는 명예와 불명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명예를 잊고 살고 있다,
이 사회의 보편적 가치관은 "가진자와 가지지 않은자"라는 말에서는 "돈" 혹은 "힘"이라는 문자를 떠올리는 것이 정답이다. 오히려 이 대목에서 만약 "명예"를 가진자와 "명예"를 가지지 않은자로 연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 사회의 부적격자이거나 혹은 몽상가 일 것이다,
오늘도 일간 신문에는 황우석교수의 논문에 대한 진위공방과, X - 파일에 대한 진실게임 이야기가 어김없이 등장하고, 주식투자 실패로 회사공금을 횡령한 어느가장의 이야기와 부모가 없이 팽개쳐진 어느집 아이들의 이야기가 동시에 실려있다.
이쯤되면 우리도 진지하게 명예형의 부활을 검토 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를 기만하고 그 기만의 댓가로 부정한 이익을 취하거나,누군가가 경제적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 이유로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팽형"의 도입..
지금 이시점에서 어떤 기개있는 정치인이 의원입법으로 이런 법안을 발의한다면 필자는 주소지를 옮겨서라도 그사람에게 신성한 한표를 던질 용의가 있다.
"명예가 존중 받는 사회"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이 될 수 있지도 않겠는가....
의사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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