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수도를 역사적 전략적 편의적 유형으로 나누었다. 민족이나 국가의 정통성을 지닌 이탈리아의 로마는 역사적 수도다. 균형발전을 택해 이스탄불에서 국토 중심으로 옮긴 터키의 앙카라는 전략적 수도이고 미국의 워싱턴은 편의적 수도다. 셋 모두를 충족하는 역사적 고도(古都), 전략적 요충, 통일조국의 한복판 서울은 세계 어느 나라 수도와 비교해도 뛰어난 역사적 전략적 합리적 우위를 갖춘 곳이다.
서울은 유구한 역사를 면면히 이어온 유서 깊은 도시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세력을 다투던 마당이었다. 1394년 조선왕조의 도읍으로 출발한 이래 학문 과학 경제 중심지로 융성한 후 줄곧 핵심도시로 성장했다.
21세기는 문화 지식 경제의 시대다. 진정 나라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행정도시 건설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경복궁, 북촌, 인사동, 운현궁, 탑골공원, 창덕궁, 종묘, 피맛골, 남산한옥마을, 광통교 수표교 등 10개 다리와 흥인지문(동대문) 광희문 등 성곽을 옛 멋 그대로 복원해 ‘서울문화벨트’를 조성할 것을 제안한다. 천변에 30∼40층의 고층건물을 짓는 것은 청계천을 한낱 개천으로 전락시키게 되므로 프랑스 파리처럼 저층을 유지해야 한다. 박은식 김두봉 홍명희 최남선 김성수 등이 조선광문회에 모여 3·1독립선언서를 논의했던 장통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세계 만방에 조선독립을 외친 이준 열사의 기념장소인 관수교. 1951년 6·25전쟁 포화 속 천변 뚝방길에 생존의 난전을 펼쳤던 배오개 피란민들…. 이들의 역동적 삶을 조형물로 재현함으로써 역사성과 고유성을 높여 여행객들이 가보고 싶은 국제적 명소로 만들어야 한다. 행정도시 건설에 50조 원 이상 든다는데 그 일부만 들여도 관광수익으로 엄청난 국부를 이룰 수 있다.
청계천 복원은 서울을 살리는 데 하늘이 준 기회다. 통일을 생각한다면 서울의 행정도시 기능을 빼버릴 수 있는가. 수도 형성은 그 민족의 업적이며, 고결한 정신은 그 심장에 모이는 피다. 여기에서 사방으로 통하는 길이 열리고, 여기에서 나라의 살림이 꾸려지고, 여기에서 민족의 문화가 꽃핀다.
고정일 동서문화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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