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주가 된 후 37년 만인 지난달 서울 강남구 대치동으로 이사한 이모(57) 씨. 이 씨는 20세이던 1968년 경북 울진군에서 처음 가장이 된 후 대구, 인천, 서울 관악구 등을 거쳐 13번 이사를 한 끝에 지난달 강남으로 이사했다.
전세와 자가(自家)를 반복하며 울진군→서울 구로구→인천→대구 동구→서울 구로구→동작구→관악구→성동구→송파구→광진구→양천구→용산구를 거친 것. 이 씨는 “처음에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이사 다녔고 그 후에는 교육과 재산 증식의 목적으로 강남행을 결심했다”며 “돌이켜보면 ‘강남이 뭐기에’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질 높은 교육과 부의 상징으로 통하는 ‘강남(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집’이 재산 증식의 거의 유일한 수단인 보통 사람들의 경우 몇 번이나 이사를 하고 얼마나 시간이 걸려야 강남까지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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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가 부두완(夫斗完) 서울시의원, 서울시, 강남 서초구와 공동으로 강남구 압구정1동 대치1·2동 도곡2동, 서초구 서초1·2·4동 반포2·3동 등 9개 동의 10, 11월 신규 전입자(450가구)를 조사한 결과 평균 12년 4개월 동안 4.5회 이사를 다닌 끝에 현 주거지에서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강남권으로 이사한 나이는 평균 만 42.5세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결과는 국내 처음으로 특정 지역 거주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이사 횟수와 이동 경로 추적조사를 통해 나타났다.
▽서울→대전→대구→부산 찍고!=지난달 서초구로 이사한 한모(62) 씨는 1977년 가구주가 된 후 28년 동안 무려 16번을 이사한 끝에 평생 품었던 목표를 이뤘다.
평균 1년 7개월마다 한 번꼴로 이사를 다닌 셈이다. 한 씨는 경기 김포시에서 시작해 경남 진해시→인천 옹진군→서울 영등포구(2회)→서대문구→옹진군→서대문구(2회)→양천구→서대문구→영등포구→서대문구→영등포구→김포시를 거쳐 지난달 서초구 잠원동으로 옮겼다.
지난달 잠원동으로 이사한 김모(49) 씨도 25년 동안 광주, 서울 강동구 등을 돌며 15차례 이사를 다녔다. 김 씨는 “한곳에서 가장 오래 산 기간이 3년”이라며 “초기에는 아예 일부 짐은 풀지도 않고 지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씨가 강남행을 결심한 것은 주거 환경과 재산 증식 때문. 이후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조금씩 평수를 늘리고 자신이 잘 아는 동네 안에서 가격이 오를 만한 곳을 골라 다니며 재산을 증식했다.
조사 대상 중 4명 가운데 1명(111가구, 24.6%)은 강남권으로 가는 데 1년 이상∼5년 미만이 소요됐다. 20년 이상 걸린 사람도 이와 비슷한 23.5%(106가구)였으며 5년 이상∼10년 미만이 16.4%(74가구), 15년 이상∼20년 미만이 13.7%(62가구)였다.
허영(許煐) 서울시 주택국장은 “위장 전입이나 가구 분할을 하는 경우가 일부 있기는 하지만 통상 전출입자의 70∼80%는 정상적인 이사”라며 “대개는 외지에서 시작해 오랜 노력 끝에 조금씩 집을 키워 강남으로 이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남권 출신이 지방보다 2배가량 빨라=첫 가구주가 강남에서 된 주인이 지방 출신 첫 가구주보다 2배 정도 빨리 강남권으로 이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지역에서 처음 가구주가 된 사람은 조사 대상 전체(450가구)의 19.1%인 86가구로 이들이 타 지역으로 이사 간 후 다시 강남으로 이사하는 데 평균 3.6회, 7년 3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서울 비강남권 출신 가구주(51.5%, 232가구)가 강남권으로 가는 데는 전체 가구 평균과 비슷한 평균 4.4회, 12년 3개월이 소요됐다.
서울 외 지역(지방)에서 최초 가구를 구성한 사람(29.3%, 132가구)은 평균 5.3회, 15년 8개월이 걸렸다.
조사 대상인 9개 동도 중대형 아파트가 많은 곳과 학원이 많은 곳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삼풍, 삼성래미안 등 중대형 아파트가 많은 서초구 서초4동이 평균 3.5회에 6년 5개월로 가장 짧았으나 상대적으로 적은 평수가 많은 서초구 반포2동은 4.0회에 13년 1개월이 걸렸다. 학원이 밀집한 강남구 대치1동은 4.6회, 12년 8개월이 걸렸다.
조사에 참여한 부 시의원은 “예외도 있지만 지방에서 시작해 30여 년 동안 10번 이상 이사를 한 끝에 강남에 온 가구도 상당수”라며 “개인의 노력은 인정하지 않고 강남 사람 전체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어떻게 조사했나
이번 조사는 서울 강남지역(강남구, 서초구) 9개 동의 10, 11월 전입자 중 동별로 50가구씩 모두 450가구를 선정해 각 가구의 전출입 횟수와 소요 시간을 산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조사는 서울시, 서울 강남 서초구가 제출한 인구이동보고서와 주민등록등본상 전입 경로를 근거로 했으며 10, 11월 전입한 가구주에 대해 최초 가구 구성 주소지부터 최종 기착지까지 이동 경로를 분석했다.
이사 횟수에서 최초 가구 구성 시점을 1회 이사한 것으로 간주했다. 예외의 경우도 있지만 가구 구성은 장성한 자녀의 분가로 인한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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