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오룡분교 아이들 “처음 본 서울… 꿈이 커졌어요”

  • 입력 2005년 12월 29일 03시 01분


어린이 보호 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의 주선으로 전남 진도군 고성초등학교 오룡분교생들이 27일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홍진환  기자
어린이 보호 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의 주선으로 전남 진도군 고성초등학교 오룡분교생들이 27일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홍진환 기자
“우와, 여기가 바로 제가 커서 뛸 곳이에요.”

이상현(가명·7) 군은 27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며칠 동안 꿈속에서 보았던 경기장을 실제로 본 상현이의 눈은 더욱 빛났다.

상현이는 경기장 선수 대기실에서 자신의 우상인 ‘박지성’ 선수가 앉았다는 자리에 앉아 한참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전남 진도군 임회면 연동리 바닷가 마을에서 아버지, 할머니, 누나(중1)와 함께 사는 상현이는 첫 서울 나들이를 했다. 상현이네는 할머니가 10시간 동안 배추와 대파를 뽑는 일로 벌어 오는 일당 3만 원과 아버지가 간간이 버는 품삯으로 살아간다.

올가을 오룡분교생들이 세이브더칠드런에 보낸 서울 나들이를 희망하는 내용의 엽서. 홍진환 기자

진도군 고성초등학교 오룡분교 전교생 23명 가운데 약 70%가 상현이와 같은 결손가정 출신이다. 이들은 부모가 이혼하거나 사업을 하다 망해 대부분 할머니 손에서 자란다.

이들에게 11월 초 엽서 한 장이 날아왔다. 어린이 보호 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이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룡분교 전교생 23명은 각자 한 장씩 엽서를 써서 보냈다. 아이들의 소원은 ‘서울 나들이’.

“수족관을 보고 싶어요.” “놀이동산에 가고 싶어요.” “지하철을 타고 싶어요.” 서울에 가고 싶은 이유는 다양했다.

엽서를 보낸 뒤 아이들은 매일 아침 선생님에게 “답장 안 왔어요?”라고 물었다. 10일 마침내 답장이 도착하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얼싸안았다.

상현이는 이날부터 매일 가방에 칫솔 양말 등을 넣어 다니며 서울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26일 오전 8시 귀에 멀미약을 붙이고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로 올라온 이들은 첫날 롯데월드, 둘째 날 서울월드컵경기장과 국립중앙박물관, 마지막 날 코엑스 아쿠아리움을 둘러봤다.

1학년 이진(7) 군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어른이 되면 할머니와 함께 서울로 올라와서 살겠다”고 말했다.

서울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피자와 갈비탕에 손도 못 댔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이 비위에 맞지 않았기 때문. 이들은 자장면을 주문해 먹었다.

전국에 있는 분교는 모두 533개. ‘세이브더칠드런’은 GS홈쇼핑의 후원을 받아 환경이 열악한 분교가 요청하면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오룡분교 최인숙(58·여) 교사는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심어 주게 돼 기쁘다”며 “가족과 사회의 무관심으로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는 분교의 어려운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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