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호텔학교와 이탈리아의 문화재 복원학교에서 중국의 무술학교까지, 손기술과 예술적 감각, 현장 적응형 실무기술이 어우러진 활기 넘치는 직업교육 현장은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에게는 적성에 맞는 행복한 직업 인생을, 미래의 한국사회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활력 있는 사회로 들어서는 문을 활짝 열어 줄 것이다.》
■코-레쟁 캠퍼스 가보니
레만 호반을 죽 달려가던 차의 창 위쪽으로 아득한 산 중턱에 중세의 고성(古城) 같은 건물이 눈에 확 들어왔다.
“저 건물은 뭡니까?”
동행한 플로란 론데스 스위스 호텔 매니지먼트 스쿨(SHMS) 사무국장에게 물었다.
“저곳이 곧 우리가 도착할 SHMS의 코(Caux) 캠퍼스입니다.”
“예? 저 높은 곳이 학교라고요?”
구절양장(九折羊腸)이 따로 없었다. 차는 영동고속도로의 옛 대관령 구간을 연상케 하는 급커브와 급경사의 눈길을 20여 분간이나 달렸다. 마음을 졸이는 순간들을 뒤로하고 문득 햇살이 한결 화창해졌다고 느꼈다. 저 아래 레만 호의 물결이 흐린 안개에 싸여 가라앉아 있었다. 해발 1200m. 1905년 문을 연 ‘코 팰러스’ 호텔에 차가 닿았다. 예전에는 5성급 호텔이었지만 오늘날엔 이 학교의 제1 캠퍼스로 사용되는 곳이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단정한 정복을 입은 수십 명의 학생이 휴식시간에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럽인, 아시아인, 인도인…. 갖가지 다른 악센트의 영어 목소리로 떠들썩했다.
이윽고 론데스 국장은 1학년 ‘음식·와인 서비스’ 실습 현장인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동료 학생들이 웃음 띤 얼굴로 앉아있는 가운데 실습조 학생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접시를 날랐다.
“잠깐, 방금 접시가 올 때 편했나요?”
“아뇨, 이 친구 팔이 눈앞을 가렸어요.”
“자, 들었죠? 몸이 손님의 시선을 가리는 시간은 아주 짧아야 합니다. 서두르지 말고, 다시 한 번!”
스위스 호텔 매니지먼트 스쿨은 1992년 문을 연, 비교적 ‘젊은’ 호텔학교다. 그러나 이 학교는 매년 10%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글뤼옹 인스티튜트, 레로슈 호텔 매니지먼트 인스티튜트 등 경쟁 학교들이 학생 수 감소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경영전문 주간지 ‘유러피안 비즈니스 저널’에 특집기사로 소개될 만큼 각광을 받고 있다.
이 학교 학생은 2200명. 론데스 국장은 “제2외국어 수업을 제외한 전 과정이 영어로 진행되는 학교 중에서는 SHMS가 최대 규모”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2캠퍼스가 있는 인근 레쟁으로 향했다. 몽트뢰에서 차로 40여 분, 한층 높은 해발 1600m의 스키 타운이다. 이 학교는 급증하는 학생을 수용하기 위해 리조트 체인 ‘클럽메드’ 소유의 리조트였던 기차역 앞의 ‘몽블랑 호텔’과 ‘벨베데레 호텔’ 등 두 건물을 지난해 매입해 캠퍼스로 개조했다. 서로 약 100m 떨어져 있으며 30m 정도의 고도 차가 나는 두 건물은 케이블을 사용한 ‘레일웨이’로 연결된다. 주방만 해도 프랑스식, 이탈리아식, 와인·치즈용, 제과제빵용 등 다섯 개. 말끔하게 정비된 주방을 둘러보다 한국인 김병용(22) 씨를 만났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학사(BA) 코스를 다니고 있는 그는 최근 실력을 인정받아 구내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는 ‘인스트럭터’로 선발됐다.
“우리 학교의 장점은 철저히 실무 능력에 초점을 두고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점이죠. 주방에서부터 하우스키핑(객실 정리), 리셉션, 회계, 파티 플래닝 등에 이르기까지 세부 사항을 꼼꼼하게 가르치기 때문에 호텔 내 모든 직위를 교과 과정 내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만큼 실전에 즉각 적응하기가 쉽죠. ”
디플롬(자격증) 과정에 재학 중인 홍완기(20) 씨는 “주방과 레스토랑 등 실습시설 뿐 아니라 커피숍, 바, 스파 등 학생 편의시설도 혀를 내두를 만하다”라고 자랑했다. 호텔학교인 만큼 기숙사 역시 ‘호텔 수준’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몽트뢰(스위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호텔업의 고향’ 몽트뢰는…
몽트뢰는 스위스 서부 레만 호반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수도인 베른에서 자동차로 2시간, 레만 호 반대편인 제네바에서는 1시간 거리인 휴양도시. 인구 2만3000명에 불과한 소도시지만 스위스가 오늘날 세계에서 손꼽히는 관광대국으로 성장한 데는 ‘스위스 호텔업의 고향’으로 불리는 이 도시가 큰 역할을 했다.
레만 호 주변은 기후가 온난해 유럽인이 겨울에 많이 찾는 지역. 이 일대에서도 몽트뢰를 중심으로 한 인근 에글, 브베, 샤토되 등은 해발 1000m를 훌쩍 넘는 알프스 산간지대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어 스키 등 겨울 스포츠를 즐기기에도 적합하다. 리옹 디종 등 프랑스의 대도시와 가까울 뿐 아니라 파리에서 출발하는 관광객에게도 프랑스 영내인 샤모니보다 오히려 접근하기 용이하다.
이 때문에 19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상류층은 겨울이면 이 지역을 앞 다투어 찾았다. 맑은 공기 때문에 주로 결핵환자의 요양소로 쓰였던 고산지역 산장들도 잇따라 호텔로 개발됐다. 특히 영국인들은 당나귀 등에 욕조를 싣고 험한 산길을 올라 이목을 끌기도 했다.
오늘날 몽트뢰는 7월마다 열리는 유럽 최고의 재즈 축제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로 명성을 얻고 있다. 호반에 위치한 9세기의 건물 ‘시옹 성’도 바이런의 서사시 ‘시옹 성의 죄수’로 유명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제네바와 로잔 등 인근의 대도시를 찾는 비즈니스맨들도 몽트뢰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맛보기 위해 이 작은 도시를 즐겨 찾는다.
스위스 호텔학교협회에 속한 15개 학교 중에서도 절반에 가까운 7개가 몽트뢰와 레쟁, 글리옹, 르부브레 등 몽트뢰 인근 지역에 있다.
■2년 6개월 교과과정
스위스 호텔 매니지먼트 스쿨(SHMS)의 교과과정은 2년 반 과정의 디플롬 과정으로 시작된다. 첫해에는 서빙 주방 컴퓨터 접대를, 2년차에는 객실정비 마케팅 회계 관광학 등을 배운다. 그러나 학교 교육은 매년 5개월의 집중 수업이며, 나머지 4∼6개월을 이용해 권위 있는 호텔과 레스토랑이 인증하는 ‘인턴십’을 받아야 한다.
인턴십 기간에는 매달 2000스위스프랑(약 150만 원) 정도의 급료를 받는다. 매년 2만∼2만5000스위스프랑(약 1500만∼1900만 원)의 수업료가 부담되는 수준이지만 인턴십으로 어느 정도의 벌충이 가능한 셈. 스위스나 다른 유럽 국가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턴십이 가능하다. 인턴십 과정의 성과를 설명하는 ‘리포팅’에서 탈락하면 유급이 불가피하다.
이곳에서 디플롬 과정을 마치면 미국 호텔·모텔협회가 인증하는 디플롬 자격을 별도의 인증 절차 없이 받을 수 있다. 디플롬 과정을 마친 뒤엔 원할 경우 5개월간 접대, 여행, 이벤트 등의 특화과정을 이수한 뒤 학사(BA) 자격을 받게 되고 나아가 1년 동안의 심화 실무교육을 마친 뒤 석사(MA) 자격을 받게 된다.
학사 석사 과정은 자매학교인 영국 더비대와 공동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며, 졸업 후에는 더비대 등에서 박사과정 수학을 비롯한 관련 연구를 계속할 수도 있다. 이들 과정을 이수하는 동안 팀을 짜서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연회(Banquet) 실습 프로그램과 각 나라의 문화를 자랑하는 ‘인터내셔널 데이’ 프로그램은 성과를 학점으로 인정받을 뿐 아니라 학창 생활의 즐거운 추억이 되기도 한다.
20세기 초부터 5성급 호텔로 명성을 얻어 온 ‘코 팰러스’ 호텔의 설경. SHMS는 해발 1200m의 고지대에 위치한 이 유서 깊은 건물을 장기 임차해 제1캠퍼스로 사용하고 있다. 몽트뢰=유윤종 기자 |
얼마 전 졸업후(PGD) 과정을 마친 김태형(21) 씨는 “특히 올해 인터내셔널 데이에는 한국요리와 태권도, 부채춤, 즉석 난타 공연이 인기를 끌어 캠퍼스 내에 ‘작은 한류’를 일으켰다”고 소개했다.
SHMS 유학 희망자들의 유학 수속을 돕고 있는 유학채널의 권상오 부장은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 청취 능력이 권장된다”며 “학교에서 실시하는 어학시험에 불합격할 경우 현지에서 어학코스를 별도로 밟게 돼 금전과 시간의 손실이 따르니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몽트뢰=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돈하우저 학장 인터뷰
“SHMS의 경쟁력은 즉시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실무 위주의 교육에서 나옵니다. 세계 각국의 호텔과 서비스 업체들이 졸업생들의 탁월한 업무 능력을 주목하게 됐고, 이에 따라 더 많은 우수한 인재가 몰려드는 것이죠.”
SHMS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에마뉘엘 돈하우저(39·호텔경영학·사진) 교수의 설명. 그는 “중국, 싱가포르, 태국, 독일 등에 지사를 두고 적극적으로 입학생을 유치하고 있는 점도 학교의 수준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 학교 학생의 국적은 60개국을 넘습니다. 다른 스위스 호텔학교뿐 아니라 세계 어떤 학교보다도 넓은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한 거죠. 이 점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게 있어서 특히 중요합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교류하고 공부하며 문화적 차이를 느낀 이들이 훗날 세계인의 문화적 다양성을 감안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특히 한국 학생들이 열정과 탁월한 역량으로 교수진과 다른 나라 출신의 학생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은 자체적인 위계질서가 있어서 선배들이 후배들을 엄격하게 지도하며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에게도 배타적이지 않은 점이 돋보이죠. 대체로 사교적이라고 할까요. 성취 동기가 높은 한국 학생들이 학업에서 높은 성취를 나타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학업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채 중도 포기하는 안타까운 사례도 더러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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