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온 소년소녀가장 30명은 등대가 있는 동쪽 언덕에서 새해 첫 해가 뜨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저마다 손에는 새해 소망을 적은 방패연, 가오리연을 쥐고 있었다.
새해 소망은 아이들 각자의 얼굴 표정만큼이나 다양했다. 소망 가운데 남에게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가족들의 건강을 빌고 이웃과 친구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베풀겠다는 다짐이 대부분이었다.
‘아파서 늘 누워 계신 할머니, 내가 결혼해 손자 볼 때까지 건강하셔야 할 텐데…. 불쌍한 내 동생 연이도 건강하게 잘 놀아야 하는데….’
‘올해는 슬픈 일보다는 웃을 일이, 혼자 있는 시간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예정된 해뜰 시간이 15분이 지나도 해는 좀처럼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분쯤 지났을 때 비로소 바다 위를 두껍게 덮고 있던 구름 사이로 태양은 잠시 얼굴을 보여 줬다가 이내 구름 뒤로 숨어 버렸다.
그러나 아이들은 크게 실망하지 않고 새해 소망을 적은 연을 하늘로 날려보냈다. 그리고 밝은 얼굴로 재잘거리며 언덕을 다시 내려왔다.
눈앞에만 보이지 않았을 뿐 먹구름 뒤에는 태양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복지재단과 KTF가 주최한 전국 소년소녀가장 생활수기 모집에서 상을 받은 아이들이 마라도에서 ‘희망’이라는 보석을 가슴에 품고 새해를 맞았다.
이들은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대부분이 병든 할머니, 어린 동생을 돌보며 집안 살림과 학교 공부를 함께하고 있다. 생활수기에 이런 사연들을 절절이 풀어냈다.
동상을 받은 세미는 초등학교 5학년 개띠. ‘뮤코지방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손가락이 굽어지고, 무릎도 약해 체육시간에는 늘 교실에 앉아 있다. 실제보다 나이도 더 들어 보인다. 마라도 해돋이를 보러 오기 전날도 하루 종일 자기공명영상장치(MRI) 검사를 받았다. 치료비만 한 달에 70만 원이 넘어 친척들의 도움을 보태도 턱없이 부족하다.
세미의 가정평가서에는 “친구도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는 실정. 항상 동생하고만 다닌다. 이번 입상과 캠프 경험이 희망과 꿈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캠프기간 내내 세미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과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밝은 표정이었고 자주 웃었다.
마라도에서 제주도로 돌아오는 배 위에서 세미에게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세미는 “가수가 돼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 주고 싶다”고 수줍게 말했다. 이번 행사가 세미의 가슴에 희망의 싹을 심어 준 걸까.
한국복지재단의 서지수 사회복지사는 “우리가 국토의 막내인 독도와 마라도를 버리지 않고 더 많이 사랑하듯이, 힘든 환경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소년소녀가장 아이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라도=김광현 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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