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납고를 빠져나온 기체가 미끄러지듯 활주로 출발선에 멈춰선 순간. 국산 초음속공격기인 A-50에 민간인으로 최초 탑승한 기자의 헬멧 스피커로 지상관제소의 축하메시지가 들려왔다. 수차례의 심호흡에도 심장박동은 빨라지고 손에는 땀이 배어났다.
동아일보 기자 A-50 탑승체험 “6t기체 튕겨나가듯”
수초 뒤, 굉음을 내며 6.4t의 기체가 튕겨져 나가듯 활주로를 내달렸다. 3만 마력짜리 엔진이 불을 뿜자 수초만에 시속 200km에 도달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은 조종석에 착 달라붙었다. 휙휙 스쳐가는 풍경을 뒤로 하고 치솟을 듯 하던 기체는 가쁜 숨을 고르며 속도를 줄였다.
비록 창공을 날진 못했지만 엔진출력을 높여 활주로를 질주하는 '하이 택시'High TAXI)로도 A-50의 성능을 충분히 체감할 수 있었다.
함께 탑승한 이충환(43) 공군 중령은 "시험비행 조종사 일원이 된 것을 축하한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새해 분위기가 가시지 않은 10일 오전. 중부전선 공군 제20전투비행단내 국방과학연구소(ADD) 항공시험장에서 이 중령 등 공군 제52시험평가전대 소속 조종사 4명이 비행일정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었다.
국산 초음속훈련기 T-50의 '형제'인 A-50은 지난해 말 공대공(空對空) 미사일 발사시험에 이어 최근 공대지(空對地) 미사일 발사시험도 성공했다. 이날 비행은 A-50에 500파운드짜리 모의폭탄 4발을 장착해 인근 사격장에 투하하는 것으로 양산을 위해 꼭 성공시켜야 할 테스트다.
얼마 뒤 이들이 탄 A-50 2대가 비행을 하는 동안 기체에 설치된 400여개의 센서로부터 수많은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지상관제소의 10여개 모니터로 수신됐다.
2003년 9월 첫 비행에 성공한 A-50이 우수한 성능을 국내외에 입증한 것은 시험비행 조종사들의 땀으로 얼룩진 마후라 덕분이다.
이들은 T/A-50처럼 새로 개발된 항공기를 '완성품'으로 다듬는 주역. 성능이 검증된 기체에 탑승하는 일반 조종사와 달리 이들은 시제기(試製機)를 타고 고난도 기동과 각종 위험상황을 연출해 기체 성능을 평가한다.
52전대 평가실장인 정영식 중령(대령 진)은 "음속돌파나 비행 중 엔진 재시동과 같은 고위험의 비행을 할 때면 초긴장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또 비행 중 기수를 높이고 속도를 줄여 고의로 조종기능을 상실시키는 고영각(High Angle of Attack) 기동은 수초 이내 조종기능이 회복되지 않으면 비상탈출까지 감수해야 한다. 실제로 T-50의 시험비행 중 엔진이 갑자기 꺼지는 일촉즉발의 사태도 있었지만 조종사와 엔지니어의 침착한 대응으로 무사 귀환하기도 했다.
생명을 담보로 임무를 수행하는 대원들 중 이 중령은 '맏형'이자 T-50의 산 증인. 1995년 기본훈련기인 KT-1 시제기를 시작으로 99년 차기전투기(FX) 사업에 참여해 F-15K와 라팔 등 최첨단 전투기들을 평가한 이 중령은 2001년부터 T/A-50의 조종간을 잡았다.
지난해 서울 에어쇼와 두바이에어쇼에서 T-50으로 LOOP묘기(360도 회전)와 저속비행 등 곡예를 방불케 하는 고난도 비행으로 박수 갈채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화려한 순간은 잠시, 대원들은 일상은 비행과 평가, 교육으로 팍팍하다. 일요일을 빼곤 매일 두 차례씩 비행을 해야 하고 관련 전문지식을 쌓느라 하루해가 짧다. 자기 몸무게 8배 이상의 중력가속도(G)를 견뎌야하는 고난도 기동이 잦을 때면 '파김치'가 되고 비행일정에 따른 잦은 출장으로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있기 일쑤다.
그러나 13년간 2조원의 개발비와 수많은 관계자들의 땀과 눈물의 결정체인 T/A-50을 '명작'(名作)의 반열에 올리겠다는 자부심과 보람으로 대원들은 조종간을 잡고 있었다.
오전 비행을 끝낸 지 수 시간 만에 오후비행에 나서는 대원들에게 "소원이 뭐냐"고 물었다. "훗날 한국형 첨단전투기가 영공은 물론 세계의 하늘을 누비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때 단 몇 명의 사람이라도 우리들을 기억해준다면 바랄 나위가 없습니다."
△시험비행 조종사는=시험비행 조종사(Test Pilot)는 1000시간 이상의 비행경력을 보유한 베테랑 조종사 중 공군사관학교 졸업성적과 그간의 비행 교육 및 훈련실적을 엄격히 평가해 선발된다.시험 조종사로 선발되면 반드시 미국 시험비행학교(NTPS)에서 1년간 고강도의 전문 과정을 통해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1인당 수억원이 소요되는 이 과정을 통해 조종사들은 프로펠러기부터 첨단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수십여종의 항공기에 탑승해 성능을 평가하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일반 조종사와 마찬가지로 시험비행 조종사도 사고의 위험은 마찬가지. 2003년 미국 현지에서 비행 교육을 받던 시험비행 조종사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모든 교육을 마치고 시험비행 조종사가 되면 국내에서 개발하거나 해외에서 도입하는 각종 항공기를 타고 그 성능을 평가하게 된다.
하지만 시험비행 조종사에 대한 생소한 시각과 고된 임무 때문에 자원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실정이다. 현재 국내의 시험비행 조종사는 현역과 민간을 합쳐 15명 안팎에 불과하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시험비행 조종사(Test Pilot)::
1000시간 이상의 비행 경력을 보유한 '베테랑 조종사' 중 공군사관학교 졸업 성적과 그간의 비행교육 및 훈련 실적 등을 엄격히 평가해 선발된다. 시험비행 조종사로 선발되면 반드시 미국 시험비행학교(NTPS)에서 1인당 수억원이 소요되는 1년간의 고강도 전문 연수과정을 통해 공인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동아일보 기자 A-50 탑승체험 “6t기체 튕겨나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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