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왕책우]아기엄마도 이름을 불러주오

  • 입력 2006년 1월 1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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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산 지 벌써 15년이 넘었다. 돌이켜 보면 한국 생활 중에 많은 것이 생각난다.

한국에 와서 처음 부닥친 문제는 제사였다. 20∼30명의 친척이 20평도 채 안 되는 집에 모이는 것도 이상하게 보였고, 남자들이 몇 시간 동안 계속 술만 마셔 대는 것도 그랬다.

반면 여자들은 며칠 전부터 제사 음식을 만드느라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것은 물론 제사 당일에도 편히 식사할 겨를이 없었다. 엄숙하게 조상을 추도한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놀랍기만 했다. 한국인 남편은 “제사는 조상을 추도한다는 의미 외에 흩어져 사는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애써 둘러대지만 제사 때마다 몸살이 날 정도로 제사가 싫었다.

유교 사상의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조상이 돌아가신 지 3년간만 기일을 지킨다. 그 이후에는 모든 조상에 대해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만 제사를 지낸다. 한국에서는 왜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증조, 고조, 현조까지 기일을 지킬까. 이런 질문이 몇 년간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가족 구성원 중 한 분, 두 분 돌아가시는 이가 늘면서 제사에 참여하는 인원이 점점 줄어갔다. 이제 한국의 제사 풍습도 잔치처럼 호들갑 떠는 분위기에서 정숙한 분위기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중국에서 대학원 다닐 때 한국인 유학생인 한 후배가 “중국이나 서양에서는 여성이 결혼하고 나서 자신의 성을 없애고 남편의 성을 쓰게 되는데, 한국에서는 여성이 계속 자신의 성을 쓴다”며 한국 여성이 존중받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 여성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성은커녕 이름조차 좀처럼 불리지 않은 채 ‘○○ 엄마’라는 호칭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정말 큰 충격이었다.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자식을 위해 헌신하며 희생하는 모성애의 표현인 것처럼 여겨진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자녀를 매우 사랑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부모의 넘치는 사랑은 종종 부작용을 초래하곤 한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연약하고 이기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은 무척 보기 좋았다. 하지만 요즈음엔 양보하는 젊은이가 드문 것 같다. 중국에는 ‘자녀 한 명만 낳기’ 정책 때문에 집집마다 자식이 귀하다. 그래서 모두가 자신의 권리와 이익만 좇는 ‘소패왕(小覇王)’이 되어 큰 사회 문제를 초래한다고 걱정하고 있다. 내 자녀는 한국 사람이며 나도 한국 사람이 돼 가고 있다. 나는 소패왕 현상이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기를 원한다.

요즈음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한류 열풍’이 일고 있다.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는 세계 유명 작품에 못지않다. 세계의 청소년들이 한국의 인기스타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류’가 다른 나라에 전해지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깊이 있는 한국 문화가 더 많은 나라에 소개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돼야 한다.

창 밖에 눈이 내리고 있다. 천지가 하얗게 변할 것이다. 이 나라가 하얀 눈처럼 언제까지나 새하얗고 아름답기를 기원한다.

왕책우(王策宇) 중국문학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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