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체질량지수(BMI)는 18.7로 오히려 저(低)체중이다. 하지만 그의 목표 체중은 38kg.
그를 진단한 B비만클리닉 정모 원장은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소화 장애가 나타나고 있다”며 “약물보다는 운동과 식이요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살을 빼고 싶은 A 씨는 또 다른 비만클리닉을 찾아 나섰다.
▽‘정신적 비만’이 대다수=비만클리닉을 찾는 20대 여성 상당수가 A 씨와 같은 ‘정신적’ 비만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1∼2005년 10개 비만클리닉을 찾은 1만2105명 중 여성 환자는 97.8%인 1만1833명. 하지만 이들 가운데 32.6%인 3862명이 정상체중이거나 저체중이었다. 이런 현상은 20대에서 더욱 두드러져 20대 여성 환자(5021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357명이 정상이었다.
반면 남성 환자의 경우 272명 가운데 93%가 넘는 253명이 과체중 또는 비만이었다. 남성 환자의 57%가 30대 이상인 점도 여성 환자와 대조적인 대목.
백명기(白明基·백명기신경정신과 비만폭식클리닉 원장) 대한비만체형학회 상임고문은 “여성들의 경우 뚱뚱하면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팽배해 환자의 상당수가 20대인 반면 업무 스트레스와 술로 비만이 된 남성들은 뒤늦게 비만클리닉을 찾는다”고 말했다.
▽심리치료 병행해야=170cm의 키에 65kg인 대학원생 L(26·여) 씨는 낮에 거의 음식을 먹지 않지만 밤이 되면 무엇인가에 홀린 듯 부엌을 뒤진다. 한번 먹기 시작하면 식빵 한 봉지에 과자 10봉지를 단숨에 해치운다. 그러곤 음식을 모두 토해 낸다. 목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괴롭지만 L 씨는 이런 생활을 3년째 해 오고 있다.
그는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살이 빠지지 않으니 폭식을 하고 모두 토해 내는 게 습관이 됐다”며 “비만클리닉도 별 도움이 못 됐다”고 말했다.
비만 전문가들은 “비만 치료는 의사가 하는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의사는 관리자일 뿐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비만클리닉 운영자 186명 중 67명(36%)이 인지행동치료를 비만치료의 최우선으로 꼽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음으로 식이요법(34.4%)과 운동요법(17.7%)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비만이 식습관뿐 아니라 인간관계나 스트레스 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고 이들은 말한다.
▽돈 되는 장사, 비만클리닉 개업 열풍=하지만 대한비만체형학회 조사 결과 전문적 노하우를 갖고 있는 비만클리닉 의사가 예상외로 적었다. 비만 치료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가정의학과나 내과 정신과를 전공한 의사는 전체 조사 대상 186명 가운데 40%(73명)가 채 되지 않았다.
비만클리닉 운영 기간도 전체의 84.9%가 4년 미만이었다. 개업 이유에 대해 절반이 넘는 96명(51.6%)이 수입 때문이라고 밝혔다.
오동재(吳東財·미소의원 원장) 대한비만체형학회 자문위원은 “의약분업과 저출산 등과 맞물려 중소병원의 수입이 줄면서 2000년부터 전공과 무관하게 비만클리닉 개원이 붐을 이루고 있다”며 “전문성이 없다 보니 부작용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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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회식 안주-야근후 한잔 ‘다이어트의 적’▼
식사 조절과 체중 조절에 실패한 사람들은 어떤 유형일까.
이번 학술대회에서 인제대 의대 강재헌(姜載憲·가정의학과) 교수는 회식이 많은 직장인을 대표적 부류로 꼽았다. 술자리는 기름진 안주의 유혹이 있고, 다음 날 허기져 많이 먹게 되며 종일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등 여러모로 비만 치료에 치명적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회식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며 정 어렵다면 체중을 조절하는 동안만이라도 주변에 금주를 공공연히 선언하도록 한다. 불가피하게 회식에 참석하더라도 채소나 밥으로 배를 채워 안주는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주의한다.
또 다른 유형은 밤낮을 바꾸어 생활하는 올빼미족이다. 비만클리닉의 주요 고객이 야근이 많은 직업군일 정도로 불규칙한 생활과 계속되는 대낮 수면은 비만에 치명적이다. 늦잠을 자더라도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최소한 두 끼는 챙겨 먹으며, 여유 있는 낮 시간에 운동을 다니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일이 끝난 뒤 한잔하는 습관은 가장 먼저 버려야 한다.
비만클리닉의 의사를 가장 당혹스럽게 하는 환자는 바로 40, 50대 아주머니들. 평소 동창회, 학부모회, 계모임에 나가 실컷 먹고도 “조금밖에 안 먹었다”고 우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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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고혈압 환자는 약물치료 각별한 주의를▼
현재 사용되고 있는 비만치료제는 두 가지다. 음식 섭취를 억제하는 ‘식욕억제제’와 ‘지방흡수억제제’.
이 중 식욕억제제는 뇌의 중추신경을 흥분시켜 식욕을 잃게 하고 포만감을 느끼도록 한다.
국내에서 시판 중인 식욕억제제는 시부트라민,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등이다.
시부트라민은 흔히 ‘리덕틸’이라는 상품명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지방흡수억제제인 제니칼과 더불어 장기 복용할 수 있는 약물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리덕틸과 제니칼을 제외한 나머지 약물. 이들 약물은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돼 장기 복용할 경우 의존성과 내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이들 약물을 비만 환자에게 바로 투약하지 않고 식이요법과 운동요법처럼 ‘적절한 체중감량요법’에 반응하지 않는 고도의 비만 환자에게 사용하도록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또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의 사용 기간도 최대 12주까지 제한하고 있다.
식욕억제제의 부작용은 불면증, 손 떨림, 가슴 두근거림, 메슥거림, 변비, 입 마름, 두통 등이 있다.
또 혈압이나 맥박을 높일 수 있으며 다른 약과 병용할 때 부작용이 더 심해진다. 이 때문에 항우울제, 지방분해제 등 다른 약과 복합 처방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식욕억제제를 주의해서 사용해야 될 환자는 고혈압,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등이 있는 사람과 최근 정신과 약물을 복용한 사람 등이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체질량지수(BMI·Body Mass Index):
몸무게(kg)를 키(m)로 나눈 뒤 다시 한번 키로 나누면 체질량지수가 나온다. 키가 170cm(1.7m)이고 몸무게가 75kg이라면 ‘75÷1.7÷1.7=25.95’가 된다. 체질량지수 20 미만은 저체중, 20∼24는 정상 체중, 25∼30은 과체중, 30 이상은 비만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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