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보험제도는 보험으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안전한 교통문화 정착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보험제도는 교통사고 감소를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교통법규위반경력요율제도’도 그중 하나다. 이 제도는 1992년부터 범정부적 차원에서 추진된 ‘교통사고 줄이기 운동’의 일환으로 법적 근거를 보험업법에 마련하고 2000년부터 시행됐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법규 준수자와 위반자 간의 사고발생 위험률의 차이를 보험료율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자연히 사고방지 효과도 거의 없었다. 2004년 10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법규위반별 보험료율 차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정비됐다. 하지만 최근 여론의 반발이 일어나자 과속이나 신호 위반, 불법 U턴, 중앙선 침범에 대한 보험료 할증을 상당 폭 완화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선진 보험제도 구축과 성숙한 교통문화 정착으로부터 다소 멀어져 가는 느낌이어서 아쉽다.
이 제도의 핵심은 교통법규 준수 여부에 따른 운전자의 위험도에 맞춰 보험료를 공정하게 만드는 데 있다. 대부분의 교통사고가 교통법규위반에서 발생함을 감안한다면 교통법규위반 경력은 운전자의 운전습관이나 태도 등의 성향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다. 법규준수 의식을 고취함으로써 교통사고를 줄이려는 보험제도의 기능은 최대한 발휘되어야 한다. 물론 법규위반자의 보험료 부담 증가에 따른 불만이 제기될 수 있으나 이는 결코 제도의 문제점으로 비난받을 성질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료 부담이 늘어날 일부 중대 법규 위반자의 불만만을 확대하여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보험의 원리에 반하는 태도다. 또 대다수 선량한 법규 준수자는 고려하지 못한 오도된 시각이다.
이중 처벌이라는 주장도 법리에 대한 오해다. 범칙금이나 벌점은 위법행위에 대해 국가가 처벌하는 것이다. 반면 보험료 할증은 사고율이 높은 위법자가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사람에게 보험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경제적 장치다.
제도변경에 대해 일각에서는 ‘보험료의 인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법규위반자가 부담하는 할증보험료가 그대로 보험사의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더 걷힌 보험료는 법규를 성실히 준수한 운전자의 보험료할인 재원으로 사용된다. 보험계약자 간 보험료 부담의 공평성을 높이는 것. 특히 보험료는 통계에 기초해 산출돼 감독 당국의 승인을 거쳐 시행되며 보험회사가 과도한 이익을 취하도록 감독 당국이 놔두지도 않는다.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교통사고 비교’에 따르면 한국의 자동차 1만 대당 사고 건수는 137건으로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이처럼 높은 사고율은 교통여건 및 시민의 안전의식이 차량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탓으로 판단된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한 자동차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릇된 운전습관에서 비롯된 사고는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제도를 만들고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교통문화 선진국은 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해인 보험개발원 자동차보험본부장
▼반대…보험사 주머니 불리기 불과▼
개정안의 주된 내용은 뺑소니와 무면허 운전의 경우 현행 10% 할증에서 20%로, 음주운전은 1회 적발되면 10%, 2회 이상 적발되면 20% 할증해 보험료를 200%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단순 계산이라는 한계를 무릅쓴다면 2004년 자동차 대수는 1500만 대이고, 2004년 보험료 할증대상 법규 위반 단속 건수는 1350만 건으로 결국 전체 운전자의 90%가 법규 위반으로 보험료 할증대상인 셈이다. 이것이 손해보험회사들이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진짜 이유이다.
새 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한다.
첫째, 뺑소니 무면허 음주운전 등은 엄청난 불이익이 뒤따르는 중대 법규 위반 행위이다. 이런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다음 해의 보험료 인상’이 무서워 그 행위를 그만두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우리의 상식에 맞지 않는다. 한마디로 ‘교통사고 줄이기’라는 취지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
둘째, 사고를 내지도 않았는데 교통법규를 위반했다고 해서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추측해 대충 보험료에 반영하는 것은 보험 원리에 맞지 않는다. 꼭 보험료에 반영하려면 1회 법규 위반자의 사고 발생률 또는 2회 법규 위반자의 사고 발생률 또는 손해율을 산출해서 통계에 근거한 합리적인 보험료를 부과해야 한다. 1회 위반 시 10%, 2회 위반 시 20% 식의 주먹구구식 보험료 할증은 통계에 근거한 보험료 산출방법이 아니다.
셋째, 이중 처벌 금지 원칙에도 위배된다.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범칙금 부과와 벌점 강화에 보험료 할증까지 3중으로 처벌하고,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면 40∼50%의 특별할증이 또 부과되어 4중으로 처벌하게 된다. 손보업계에서는 국가가 부과하는 것과 보험사가 하는 것은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이중 처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사자로서는 분명히 1회의 위반으로 2중, 3중의 처벌을 받는 것이다.
넷째,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개인의 교통법규 위반 정보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다. 비록 공익 목적이라지만, 국가기관인 경찰청이 민간 보험사를 위해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정보 인권에 대한 침해 행위이다.
교통사고를 줄이려면 교통신호 체계가 잘못된 곳, 불법 U턴이 자주 발생하는 곳, 속도 위반이 빈발하는 장소를 찾아내 신호 체계를 바꾸고 위험한 도로를 보수하는 등 법규 위반과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또한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사고를 줄이려면 국가가 범칙금 인상, 벌점 강화 등으로 접근해야지 민간 보험사가 먼저 나서서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어느 인터넷 카페에 소비자들이 뭉쳐 보험의 대안인 ‘자가용공제조합’을 만들자는 모임이 최근 생겼다. 손보사의 자동차보험료 인상과 서비스 부실, 우량계약자 인수 거부 등 비정상적인 영업 행태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손보사는 이러한 인터넷 모임이 생긴 이유를 생각하고 반성의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김광배 보험소비자연맹 정책개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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