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사람이 늘면서 덩달아 면허취소가 억울하다며 법에 호소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에 접수되는 자동차운전면허 취소처분 취소청구소송은 일주일에 10여 건에 이른다.
이들은 소장에서 술을 먹고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던 구구절절한 ‘핑계’를 대며 법원의 선처를 구한다.
최근 한 달 간 서울행정법원에 접수된 자동차운전면허 취소처분 취소청구 소장을 통해 이 시대 주당(酒黨)들의 ‘핑계없는 무덤’을 들여다본다.
▽“택배 못하면 부모 약값-딸 양육비 못대”=유통업체 택배직으로 일하고 있는 김모 씨는 지난해 추석 특수로 일요일에도 출근을 했다고 주장했다.
일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온 김 씨는 마침 이혼한 아내가 키우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딸이 집에 오지 않느냐고 전화를 하자 속 상한 마음에 회사 동료와 술을 마셨다.
김 씨는 ‘일요일인데 설마 음주단속을 하랴’라는 생각으로 운전대를 잡았다가 면허가 취소됐다고.
김 씨는 “부모 약값, 딸 양육비, 월세 등 생계를 위해서라도 택배운전사인 내게 운전면허는 목숨과도 같은 것”이라며 선처를 호소.
▽“단지 600m 운전한 건데”=김모(45) 씨는 2000년 이후 직장에서 명예퇴직한 뒤 뚜렷한 직업을 갖지 못했다. 변변한 기술도 없는 40대를 채용해 줄 회사는 없었다. 그러던 중 김 씨는 지난해 11월 “직장을 알아봐 주겠다”며 연락해 온 선배와 자신의 집 근처 호프집에서 맥주 2병을 나눠 마셨다.
하지만 구직에 대한 부푼 희망도 잠시 후 사라졌다. 김 씨는 선배와 헤어진 후 600m 정도 차를 몰다 음주 단속에 걸려 면허가 취소됐기 때문. 김 씨는 “실직의 괴로움도 큰데 면허까지 취소당하면 살 길이 더 막막해진다”고 읍소했다.
▽“환자들 건강을 위해서라도…”=지난해 9월 혈중 알코올 농도 0.132%로 면허가 취소된 한모(31) 씨는 “현재 근무하는 회사는 국내에서 유일한 약 포장기계 제조·납품회사”라며 “약 포장기계가 병원이나 약국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인 만큼 전문기술자인 내가 해직된다면 긴급을 요하는 환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음주운전 구제 거의 없어=아무리 그럴듯한 핑계를 대도 법원에서 면허 취소처분 취소 청구가 받아들여지는 사례는 드물다. 지난해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다가 “학문적으로 기여한 바가 크다”며 구제됐던 한 대학 교수에 대한 항소심에서 법원은 “면허 취소가 정당하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한 변호사는 “가끔씩 이뤄지는 특별사면이나 생계형 음주운전자에 대한 구제조치가 오히려 상습 음주운전자를 양산한다는 비판에 최근 법원의 구제 사례도 드문 편”이라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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