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되살아난 서울 강남의 집값 오름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재건축 진행이 느린 아파트도 8·31대책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재건축 단지에서 시작된 상승세는 일반 아파트까지 번지고 있다.
8·31대책 입법이 완료되면 각종 세금 부담이 커져 강남지역 매물이 늘고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가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 8·31대책 이전보다 더 오른 곳도
강남구 청담동 한양아파트의 35층 재건축 허가가 나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등 한강변 아파트 값이 일제히 뛰었다. 현대1차 43평형은 지난해 5월 9억6500만 원 수준에서 최근 14억∼14억5000만 원까지 올랐다. 1년 사이 무려 5억 원이나 뛴 것.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는 한 달 새 5000만∼7000만 원 오른 값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말 9억5000만∼9억8000만 원 선에 거래되던 34평형이 지난주 10억2000만 원 선에 계약됐다.
영등포구 여의도동도 재건축 기본계획이 확정된 데 이어 서울아파트가 77층 초고층 재건축을 추진하기로 하면서 지난주 1000만∼3000만 원씩 올랐다.
재건축 아파트들이 강세를 보이자 일반 아파트 값도 뛰고 있다. 대치동 개포우성1차 31평형은 지난해 6월 10억 원 미만이었지만 지난해 말 11억 원에 거래된 뒤 지금은 12억 원을 호가하는 매물도 나왔다.
3월 경기 성남시 판교신도시 분양을 앞두고 분당과 용인지역 집값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용인시 죽전동 호박공인 김성규 사장은 “지난해 판교 분양을 앞두고 집값 상승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올해도 판교 분양이 가까워지자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며 “일부 아파트는 지난주보다 10% 오른 가격에 계약됐다”고 말했다.
○ “차라리 자식에게 증여”
강남 아파트를 찾는 사람은 이어지고 있지만 매물이 없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8·31대책으로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비인기지역 주택을 팔고 투자 가치가 높은 아파트를 한 채 갖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강남에 꾸준히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개포동 태양공인 박효근 사장은 “전체 단지 5600채 가운데 매물이 10여 개 안팎에 불과할 정도”라며 “양도세 부담과 집값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8·31대책의 과도한 세금 부담이 매도를 어렵게 만든 측면도 있다. 집을 팔고 싶어도 양도소득세 부담이 크다 보니 차라리 갖고 있다가 자식에게 증여하겠다는 사람이 많다는 것.
대치동 신세계공인 김영일 사장은 “강남지역의 1가구 2주택 보유자는 주로 50, 60대”라며 “양도세를 2억∼4억 원씩 내고 집을 파느니 증여세를 내고 자녀에게 물려주는 쪽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8·31대책 이후 2주택 이상 보유자들이 세금 부담 때문에 집을 내놓으면 강남 집값이 안정되리라는 정부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셈이다.
○ “8·31대책도 언젠간 완화될 것”
5월 지방선거,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공약’이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RE멤버스 고종완 대표는 “기다리면 규제가 풀린다는 인식이 팽배해 정부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선거철을 앞두고 재건축 규제 완화 및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주식에서 번 자금도 일부 부동산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강력한 재건축 규제가 일시적으로는 강남 수요를 막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급 부족을 불러 몇 년 뒤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인식도 퍼져 있다.
잠실동 현대공인 김재열 사장은 “송파신도시를 짓겠다고 하지만 미래의 일인 데다 서울시의 반대로 실현될지도 의문”이라며 “지금 당장 수급 불안 요인을 없애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동산114 김희선 전무는 “정부가 준비 중인 8·31 후속 대책에는 집값 안정과 함께 매도를 유도할 수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며 “무엇보다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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