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빛을 내지만 유성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영화가 꼭 그렇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의 시대에서 살고 있지만 영화는 아직도 오락거리로만 여겨지곤 한다. 재능 있는 작가가 혼신의 힘을 쏟아 만든 영화가 왜 그렇게 빨리 망각되는 것일까?
이 책의 지은이는 우리가 영화를 만나는 방법이 서투른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가 영화를 작품이 아닌 텍스트로 만나기를 권하는 이유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볼 때마다 다른 것이 예술일진대 영화가 우리의 일상과 나의 삶에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를 저마다의 입장에서 새겨 보자는 뜻이다.
이를테면 ‘트루먼 쇼’는 사생활 엿보기라는 색다른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얼핏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별난 사람들의 악취미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시헤이븐의 출구에서 트루먼이 던진 “Who am I?”라는 질문은 더는 그것이 남의 이야기이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 속 사건일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트루먼(Truman)’이 그야말로 ‘참된 인간(True man)’이 되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의심과 갈등, 그리고 순간순간의 선택은 바로 우리의 일상이고 현실이기 때문이다.
5000개의 카메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트루먼. 그는 문화라는 미명 아래 이런저런 검열과 통제 속에 갇혀 사는 우리의 분신이다. 그래서 영화는 관객들을 향해 진지하게 묻는다. 과연 “우리도 트루먼처럼 행동할 수 있는가?”라고.
스물아홉 편의 영화를 통해 이 책은 자기 성찰이나 생존 전략부터 사랑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관점도 물론이지만 우리 주변의 자잘한 일상을 영화의 논점과 접맥시키고 다시 철학 이야기로 발전시키는 논지 전개가 무척 돋보인다.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곳에서 삶의 이치를 발견하고, 보이는 것 너머에 가려진 보아야 할 것들을 찾는 일은 바로 글쓰기의 핵심이자 논술의 본령인 까닭이다. 낚시 이야기에서 예술과 형이상학을 말하고 춤추기에서 인생의 의미와 지혜를 찾을 때 철학은 이미 우리에게 낯선 대상일 수 없다.
좋은 책은 나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 더 나아가 좋은 책은 세상과 이웃을 향한 또 다른 관심과 의욕을 촉구한다. 여기에 소개된 영화를 다시 한번 음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은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인식의 폭과 깊이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알려 주는 확실한 증거다.
문재용 서울 오산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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