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작년 8월 대입 논술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을 급조(急造)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울대가 논술을 본고사처럼 보겠다고 하는 것이 가장 나쁜 뉴스”라고 말한 지 달포 만이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법적 근거도 약한 대입 가이드라인을 부랴부랴 만든 것부터가 코미디다. 대통령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행사했던 독재시대에도 중요한 교육정책이나 입시제도를 바꾸려면 자문기구에서 심도 있게 검토하고 각계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학생과 학교가 대비할 수 있도록 수년간 유예기간을 두었다가 새 제도를 적용했다.
▷한국외국어대는 이번 입시에서 답안을 외국어로 쓰라고 했다가 교육부 가이드라인에 걸렸다. 대학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외국어를 잘하는 학생을 뽑기 위한 문제도 못 내게 하니 외국어대라는 간판이 무색하다. 대학들이 국제화시대에 맞추어 영어 강의를 늘리는 판에 교육부는 논술에서 영어 제시문을 없애라고 했다. 나라의 문을 닫아 걸었던 대원군의 망령(亡靈)이라도 부활한 것인가. 인하대와 한양대는 인성 및 적성검사에서 한문과 영어 문제를 냈다가 ‘소양검사를 학력검사로 변질시켰다’는 까탈을 잡혔다.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내신만으로는 변별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교육부는 논술 가이드라인의 문제점과 대학들의 불만을 잘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대통령에게 ‘가장 나쁜 뉴스’를 들려주지 않기 위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인적자원을 육성하는 일을 포기해 버렸다. 코미디 같은 입시정책이 노 대통령 잔여 임기 2년 동안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답답하다. 이것도 국운(國運)이려니 하고 눈감는 도리밖에 없나.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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