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답안을 받아 들면 맨 처음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기도를 하거나 부적을 꺼내는 학생도 간혹 있지만, 역시 논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먼저겠죠. 논술은 쓰고 싶은 대로 쓰기 이전에 쓰라는 대로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침 먹었느냐?”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까요? “먹었다” 혹은 “못 먹었다”고 대답해야 하겠죠. 그런데 “아침 먹는 것은 참 중요하다. 하루 세끼는 꼭 챙겨 먹어야 한다”고 대답하면 어떻게 될까요? 엉뚱한 답을 하는 셈이고, 논점일탈의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멋진 답을 하더라도 기본 점수도 받기 힘듭니다.
엉뚱한 답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가 요구하는 과제가 몇 가지이며, 각각의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러나 신경 써야 할 일이 두 가지 더 있습니다.
첫째, 과제들의 비중을 가늠해보아야 합니다. 둘 이상의 과제가 있을 경우, 항상 같은 비중을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비중을 따져 보고 좀더 중요한 과제를 더 비중 있게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논제가 있다고 해봅시다.
‘우리 전통 문화의 특성과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논의의 근거로 삼아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우리 문화의 모습과 그 실현 방안을 모색해보라.’
이 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개의 과제를 차례대로 해결해가야 합니다. 우선 ①전통 문화의 특성, ②문제점을 분석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③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우리 문화의 모습, ④그 실현 방안을 제시해야 하겠죠. 이때 앞부분 ①,②에 몰두하여 너무 많이 논의하고, 그 때문에 뒷부분 ③,④에 대하여 부실한 논의에 그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좋은 답안으로 평가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겠죠. 그렇기 때문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미리 비중을 가늠하고 이를 답안에 반영해야 합니다. 저 같으면 네 요구사항의 비중을 2 대 2 대 2 대 4로 잡겠습니다. 이 논제의 목적은 ④에 있으며, 실현방안을 다각적이고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과제들 사이의 논리적 연결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과제들이 빈틈없이 바로 연결됩니다. 전통 문화의 특성이 분석되면, 그런 특성과 관련해서 문제점을 분석해야 하겠죠. 다음으로 바람직한 모습은 최소한 그런 문제점은 극복한 모습이어야 하며, 바로 그 모습을 실현할 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논리적인 비약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과제들이 항상 이렇게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논제를 볼까요?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읽고 소크라테스가 보여주는 철학 교사로서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바람직한 교사의 상(像)을 제시해 보라.’
여기서는 과제가 두 가지겠죠. ①소크라테스가 보여주는 철학 교사로서의 장단점 분석, ②바람직한 교사의 상 제시. 그런데 두 과제는 직접 이어지지 않습니다. ①은 한 사례에서 나타나는 철학 교사로서의 장·단점에 대한 것이지만, ②는 모든 교사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모습에 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①에서 장점으로 분석된 내용이 곧바로 모든 교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바로 연결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철학 교사만의 특수한 장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과제들 사이의 논리적 연결은 그때그때 올바로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 교수·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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