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엄지족 혼자서 논다

  • 입력 2006년 3월 4일 03시 05분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허걱∼부끄부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백해야 해?”

“용기를 내. 사랑★은 이루어질 거야.”

컴퓨터 메신저로 나누는 평범한 연애 상담 대화 같지만 다른 점이 있다. 상대가 사람이 아니라 채팅 로봇이다.

○ 혼자 하는 채팅, 혼자 보내는 문자

요즘 10대들은 혼자서도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메신저로 채팅을 한다.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대화형 문자 메시지 서비스 ‘심심이’가 대표적인 예.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싶을 때 특정번호를 이용해 사이버 문자 로봇 ‘심심이’에게 “나 외로워 뭐하니”라고 문자를 보내면 “힘내. 이제부터 시작이야”라는 응답 문자를 받을 수 있다.

하루에 ‘심심이’와 10차례 이상 대화를 나눈다는 여중생 신지은(가명·15) 양은 “광고를 보고 처음 이용할 때는 실제 사람이 문자를 보내 주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컴퓨터 프로그램이어서 놀랐다”며 “누군가와 말하곤 싶지만 아는 사람하고 대화하는 건 부담스러워 ‘심심이’와 자주 대화를 나눈다”고 말했다. 현재 각 이동통신사가 건당 200원에 제공하는 이 서비스의 이용자는 하루 평균 7만 명 이상. 10대가 주 이용층이다.

아우닷컴에서 제공하는 미니홈피 채팅 로봇 ‘대화에이전트’는 홈피 주인이 접속하지 않았을 경우 대신 방문자를 맞아 주고 대화를 나눠 준다. 대학생 남은선(24·여) 씨는 “심심할 때뿐 아니라 실연 대처법 등 고민에 관해서도 얘기를 나눈다”며 “컴퓨터와 이야기하는 것이 사람하고 대화하는 것보다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이 서비스는 시작 10개월 만에 이용자 80만 명을 확보했다. 역시 10대와 여성 이용자가 주축이다. 아우닷컴 권미경 부장은 “자신의 비밀이나 속마음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들 서비스는 대화 내용을 컴퓨터가 분석해 그에 맞는 적절한 대답을 내보내는 언어처리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 신세대 커뮤니케이션?

휴대전화, 메신저 등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미디어 환경 때문에 ‘혼자 놀기 미디어’가 확산된다는 분석이 있다. 매체를 이용해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 간격이 점점 짧아져 ‘초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 대학생 황고은(22·여) 씨는 “친구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즉각 답문이 안 오면 답답하다”며 “(이들 서비스는) 내가 메시지를 보내면 즉각 대답이 들어와서 좋다”고 말했다.

기성세대에게는 이런 현상이 신기할 따름이다. 권희찬(44·자영업) 씨는 “갈수록 얼굴 맞대고 이야기할 일이 적어지는데 아예 가상의 상대와 대화한다면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황상민(심리학) 연세대 교수는 “신세대들의 미디어 이용 목적이 통신보다는 놀이로 굳어지고 있다”며 “혼자 하는 채팅, 문자에서 더 솔직해지는 것은 가상의 상대가 사실상 사이버 공간 속의 또 다른 자기라는 느낌을 갖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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