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시험감독이죠”…인천 제물포高 무감독시험 50년

  • 입력 2006년 3월 10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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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제물포고 1학년 10반 학생들이 9일 학력평가 모의고사에 앞서 ‘양심선서’를 하고 있다. 이 학교는 무감독 시험 전통을 50년째 이어 오고 있다.사진 제공 사진작가 김영국 씨
인천 제물포고 1학년 10반 학생들이 9일 학력평가 모의고사에 앞서 ‘양심선서’를 하고 있다. 이 학교는 무감독 시험 전통을 50년째 이어 오고 있다.사진 제공 사진작가 김영국 씨
전국 고등학교가 일제히 학력평가 모의고사를 치른 9일 인천 중구 전동 제물포고교.

50년 동안 이어진 ‘무감독 시험’ 전통에 따라 신입생들은 80여 자로 된 ‘양심선서’를 했다.

선서가 끝나면 교사들은 시험지를 나눠 주고 나간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기 10분 전에 돌아와 답안지를 걷는다.

무감독 시험을 처음 치른 김민겸(16·1년) 군은 “감독이 없으니 집중이 잘되는 것 같고, 중학교 때보다 훨씬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시험을 봤다”고 말했다.

2004년 광주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부정 사건이 일어난 뒤 전국 대부분의 학교가 시험 감독을 강화했다. 교사를 2명씩 배치하거나 학부모까지 동원한다. 하지만 이 학교는 ‘양심에 따른 자율 시험’이라는 50년 전통을 잇고 있다.

교사들은 시험이 있는 날 교무실에서 독서를 즐기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다. 학생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는 분위기 덕분에 학내 폭력 사건이 한 해에 2, 3건에 불과하다.

박종조 교장은 “초대 교장의 제안으로 1956년 시작한 이 제도가 1975년 고교 평준화 때 없어질 뻔했으나 당시 학생과 교직원이 무감독 전통을 잇기로 결의했다”고 소개했다.

이 학교는 초대 교장으로 16년간 학교를 이끈 길영희(1900∼1984) 선생을 정신적 지주로 받든다. 길 선생의 친필 휘호 ‘유한흥국(流汗興國·땀을 흘려야 나라가 발전한다)’이 교무실에 걸려 있다. 그가 자주 사용했던 ‘양심은 민족의 소금, 학식은 사회의 등불’이란 말은 학생 구호로 사용된다.

동문들은 기금을 거둬 독후감 공모전과 장학사업을 펼쳤다. 1990년부터는 교사를 대상으로 ‘길영희 교육상’을 준다.

인천=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양심선서:

무감독 고사는 양심을 키우는 우리 학교의 자랑입니다. 우리는 무감독 고사의 정신을 생명으로 압니다. 양심은 나를 성장시키는 영혼의 소리입니다. 양심을 버리고서는 우리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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