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조타운에 사무실을 차리고 있는 A(사법시험 41회) 변호사는 최근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징계를 받을 위기에 놓였다.
A 변호사는 형사사건을 수임하면서 “구속되면 받은 돈을 모두 돌려준다”는 조건으로 의뢰인에게 성공 보수를 포함해 1570만 원을 받았지만 의뢰인은 구속됐다.
하지만 A 변호사는 이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의뢰인은 변협에 A 변호사를 처벌해 달라고 진정서를 냈다. 변협 조사 결과 A 변호사는 사무실 임차료, 직원 월급 등으로 이 돈을 모두 써버린 상황이었다.
변협 관계자는 “변호사가 돌려줄 돈이 없어 징계를 감수하겠다는 걸 보면 요즘 변호사들의 상황이 어떤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변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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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A 변호사와 같은 사례는 흔하다. 몇몇 유명 변호사나 대형 로펌 등이 사건을 싹쓸이하면서 많은 개인 변호사들이 ‘생계형 범죄’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변호사 업계의 자조 섞인 목소리다.
B 변호사는 서울구치소에서 한 수용자를 접견하면서 다른 수용자 25명을 소개받아 이 가운데 5건을 수임했다. 그는 사건을 소개해 준 수용자에게 선임료를 연기해 줬다. B 변호사는 이 소개자의 편지를 수감 중이던 공범에게 16차례에 걸쳐 전달했다가 변협의 징계를 받았다.
C 변호사는 사건 수임이 여의치 않자 국선변호사를 맡았다. 그는 국선변호사로서 변론 도중 피고인의 동생과 사선 변호사 선임 계약을 하고 성공보수 500만 원을 받았다가 징계를 받았다.
경매 브로커에게 변호사 명의를 빌려 주고 매월 정기적으로 일정액을 챙기는 일은 상당수 변호사에겐 관행이 됐다.
불성실 변론, 횡령, 갈취, 도박 등 ‘파렴치 행위’로 징계를 받은 변호사도 적지 않았다.
D 변호사는 사건 수임을 하고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다가 법정 기일을 지나쳤다. 수임료 500만 원을 받았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의뢰인이 선임료 반환을 요구했으나 돌려주지도 않았다.
E 변호사는 의뢰인이 민사소송 상대방에게 지급하라고 맡긴 합의금 3억 원을 주식투자로 날렸다. F 변호사는 지난해 교통사고와 관련된 민사소송을 수임하고 수임료 300만 원을 받았으나 소송을 제기하지도 않은 채 의뢰인과 연락을 끊었다. G 변호사는 수임료 500만 원을 받은 의뢰인에게 사건 진행 경과를 전혀 알려주지 않다가 의뢰인 몰래 사무실을 이전해버렸다.
○자정 기능 강화해야
변호사 범죄에 대한 변협 차원의 징계 건수는 매년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2001년 이후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 경우는 단 1명이다. 대부분 과태료나 정직 처분이었다.
이는 ‘품위를 손상했다’는 등의 모호한 변호사 윤리규정과 ‘제 식구 감싸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미국에선 변호사가 사건 상대방이나 담당 판사를 마음대로 만날 수 없다. 상대 변호사에게 미리 알리지 않을 경우 명백한 징계 대상이다.
한국도 법관과 변호사의 접촉을 금지하는 규정(‘변호사 및 검사의 법관 면담에 관한 행정예규’)이 있지만 이를 지키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은 변호사에게 더욱 엄격하고 구체적인 윤리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공보수 약정’을 미국 변호사 윤리규정은 엄격하게 제한한다.
또 변호사는 고객에게서 받은 소송비용을 변호사회에 신고한 별도 은행 계좌에 보관해야 한다. 이 계좌에 대해 미국 각 주 변호사회가 감사하는 등 엄격한 모니터링이 이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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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개업 2년차 변호사의 하소연…사무실 한달 운영비만 1000만원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조타운에 개업한 지 2년째인 이모(35) 변호사는 “한 달 1000만 원 정도인 사무실 운영비를 벌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연수원에서 공부할 때만 해도 변호사 개업만 하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밥값 때문에 친구들 만나는 것조차 두렵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의 수입은 한달 평균 1000만 원 정도. 일반인이 보기에는 상당한 고액 수입자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매달 △사무실 임대료 250만 원 △사무장 월급 200만 원 △여직원 월급 100만 원 △대출 이자 100만 원 △기타 각종 경비 등을 지출하고 나면 집에 가져갈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다는 것.
이 변호사는 “형사사건을 기준으로 사건당 500만 원을 받더라도 한 달에 3건을 수임해야 겨우 사무실 운영비를 제외하고 체면치레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판사나 검사 출신이 아닌 개업 변호사들이 한 달에 여러 건을 수임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사건이 잘못돼 당사자들이 미리 받은 돈을 돌려 달라고 해도 돌려줄 형편이 못 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사무장 없이 여직원 1명만을 데리고 일하는 변호사도 많다고 이 변호사는 귀띔했다.
이 변호사는 “로스쿨 제도 도입, 법률 시장 개방 등 개업 변호사들의 걱정거리만 늘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변호사가 미국처럼 사건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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