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경미]교원평가 이젠 받아들이자

  • 입력 2006년 3월 15일 03시 05분


20세기 초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는 교육을 예술에 비유했다. 교사는 예술가이고, 수업은 하나의 예술 공연과 같다. 교사는 교과 내용을 사이에 두고 수업에서 학생들과 대면한다. 이때 교사는 미리 정해 놓은 순서에 따라 정형화된 절차를 반복하는 것 같지만 수업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동일한 내용을 다루는 수업도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수업은 교사가 학생과 상호작용하면서 매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종의 예술적 창조행위라고 할 수 있다.

예술 작품의 값을 매기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예술 작품을 평가할 때는 전문적인 감정가의 식견이 필요하다. 예술의 성격을 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교사의 능력과 수업의 질을 측정하여 계량화하기란 쉽지 않다. 다른 모든 분야가 평가를 받아도 교원만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는 교사들의 주장은 이런 면에서 공감을 주기도 한다.

요즘 거의 모든 대학에서 강의 평가를 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강의를 평가한다는 것이 교수에게 분명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경험에 따르면 학생들은 꽤 정확하고 날카롭게 수업을 평가하고, 이를 통해 강의하는 사람은 수업을 자성(自省)할 수 있는 진단적 정보를 얻게 된다. 현대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는 것은 개선할 수 없다고 언급했는데 이처럼 평가는 개선의 동인(動因)을 제공한다.

필자의 부끄러운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강의에서 말이 빨라지다 보면 간혹 ‘가르치다’와 ‘가리키다’를 혼동하여 발음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학생이 강의 평가에서 한 학기 동안 필자가 ‘가르치다’를 잘못 발음한 횟수가 두 번이라고 준엄하게 꾸짖은 적이 있다. 흔히 범하는 실수를 횟수까지 세며 지적했다는 사실에 다소 서운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 후로는 가르친다는 표현을 할 때면 바짝 긴장하게 된다. 사소한 예이기는 하지만 이처럼 강의 평가는 수업을 개선하는 데 실제적인 도움이 된다.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공개 수업이 있기 전이면 몇 번이고 리허설을 하곤 했다. 선생님은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괘도를 갑자기 만들었고, 참관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단의 가장자리에는 공책 정리를 잘한 학생들을 앉혔다. 또 선생님은 수업 중 질문했을 때 일단 모든 학생에게 손을 들라고 지시했다. 단, 모르는 학생이 지목되는 경우를 우려하여 답을 알면 오른손을, 모르면 왼손을 들도록 미리 작전을 짰다. 당시 선생님은 한판의 멋있는 수업을 해 보이고 싶었겠지만 참관자들은 급조된 작위적 수업이라는 점을 간파했을 것이다.

지난해 말 시범적으로 실시한 교원평가에는 수업 평가가 포함돼 있다. 한 차례의 공개 수업을 통해 평가하면 수업이 일회성 쇼가 되기 쉽다는 점에서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수업을 참관해 보면 평소와 달리 새삼스러운 이벤트를 펼치는 것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본연의 수업인지 판단이 되고 또 교사와 학생들이 교감을 이루는 정도도 금방 느껴진다. 동료 교사들끼리는 명시적인 기준을 넘어서는 묵시적 판단을 통해 수업의 질을 비교적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

지난주 교원평가 시범 운영 결과가 발표됐다. 교사들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동료 평가를 해 85% 이상이 ‘우수’ 등급을 받았다. 교사들 서로가 보험을 든다는 심정과 뿌리 깊은 온정주의가 빚어 낸 결과다. 이런 발표가 있자마자 무늬만 교원평가이고 실효성이 없다는 혹독한 비판이 쏟아졌는데 일단 무늬라도 만들어야 그 다음에 더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디자인으로 발전시켜 갈 수 있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다면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교원평가가 인사고과에 반영되지 않는 미약한 강도로 추진된 것은 교직단체의 반발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첫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교원단체는 공교육 개선을 위해 교원평가를 앞세울 것이 아니라 교원 충원, 수업 시수 하향 조정 등 종합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생 수가 많은 학급에서 과중한 수업과 업무에 시달리는 교사들의 상황을 감안할 때 이해는 되지만 이미 정부는 순차적으로 학교를 신설하고 교사를 충원함으로써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평가받는 이 시대에 교사만이 평가의 무풍지대에 놓여야 할 이유가 없다. 교원단체는 긍정적 시각에서 교원평가를 수용하고 정부도 교육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경미 객원논설위원·홍익대 교수·수학교육 kpark@hongi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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